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올린 글들 결과적으로 혼란 가중할 소지 높아…글쓴이에 책임성 강화하도록 개편해야

영향력을 품는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길거리에서 ○○바보라고 외치면 별 죄가 되지 않지만 그 말을 기사로 작성하면 명예훼손에 걸릴 소지가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누군가의 사실판단에 영향을 줄 말을 하려면 적어도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라는 뜻이다. 그만큼 사실여부에 자신 있을 때 조심해서 말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이 완전히 무시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인터넷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누가 성추행을 했다느니, 사실 글쓴이가 꽃뱀이라느니 온갖 이야기를 자신 있게들 내놓는다. 자신이 직접 봤다느니, 아는 사람이라느니 별에 별 이야기가 다 있지만 글쓴이가 당사자가 맞긴 한지 초등학생인지 유치원생인지 알 길이 없다. 결국 인터넷 글은 근거가 없어도 일단 믿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터넷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특히 이번 정부에서 열어놓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이런 현상의 부작용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 게시판엔 오늘도 온갖 억울하다는 글과 누군가를 비방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이곳에서 작성되는 글들은 때로는 올라왔다는 경우에 따라 크게 이슈화되고 또 기사화되기도 한다.

 

가만히 보면 청와대 청원은 사실여부를 떠나 먼저 올리는 사람이 이슈 파이팅에서 우위를 가져간다. 얼마 전 곰탕집에서 지나가는 여성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남성의 부인이 눈물의 글을 올렸고 그 이후 갑자기 해당 여성에 대한 욕설들이 인터넷에 쏟아져 나왔다. 이수역 폭행사건 글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상대방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청와대 청원에 반박 글을 올려야 하나? 그런다고 과연 비난여론이 사라질까? 애초에 먼저 맞은 사람이 불리한 구조다. 해당 글이 거짓이 아니라도 올리는 사람의 입장이 반영돼 특정 사실만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자신 입장 대변하려고 올리는 사람이 정확히 객관적으로 글을 올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책임지지 않을 글들을 올릴 경우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감하는 이가 20만 명을 넘으면 무조건 답변을 해야 하는 가치 있는 글이라는 판단도 걱정된다. 공감(共感)은 사실 이성적 영역은 아니다. 한자어 그대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내용상 팩트가 틀리더라도 글 자체가 감정적으로 분노를 일으킨다면 공감받기가 수월하다. 20만명이 넘게 공감했으면 뭔가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할 가치를 지닌 문제라는 판단인데 이는 클릭수가 많지 않으면 별 가치 없는 글이라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실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해당 문제와 엮여 있는 기관에 잘 해결해봐라고 독려하는 것 말고는 없다. 물론 독려하면 일처리가 좀 더 빨리 될 순 있겠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은 임금이나 군주제가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곰탕집 성추해 청원과 관련해 청와대가 재판진행 중인 상황에 삼권분립 취지에 맞지 않아 답변이 어렵다했는데 그야말로 맞는 말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청와대 답변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대체 뭘 원한 것인가? 재판에 개입해서 어떻게 판결하라고 압력이라도 넣길 바랄건가?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농단을 비판할 정도의 이성이 있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상상이다.

 

청와대 청원을 개편한다고 하는데 가장 핵심은 글쓴이가 본인 글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단 실명확인이 되도록 하는 안이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 이와 더불어 사실과 다른 글로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혼란을 조장할 경우 어떻게 조치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그걸 가혹하다고 느낄 정도면 올리지 않아야 맞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청와대 청원, 나아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이들의 생각이 국민을 대표하는 생각은 아니라는 점도 정부가 챙겨야 할 듯 싶다. 다음은 IT업계에서 일하는 한 평범한 30대 직장인 친구의 넋두리다. “나 같은 직장인들은 일하느라 피곤해서 청와대 청원이나 인터넷에 글 쓸 여유도 없는데 정치인들이 몇몇 사람들이 올리는 인터넷 글을 여론이라고 할 때마다 소외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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