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주권 “불공정 약관” 주장, 국토부·공정위 항공사 약관 수정 명령 어려워…약관 효력 다툰 소송 가능성도 제기

/그래픽=셔터스톡
내년 양대 항공사 마일리지의 순차적 소멸이 예정된 가운데 소비자 단체들이 일부 약관이 불공정하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자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문제의식을 더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 단체나 정부 기관서도 당장 항공사의 약관 수정을 요구하긴 어려워 내년 소멸 시효를 앞두고도 해결책은 요원한 상태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항공 마일리지가 내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소멸될 예정이다. 지난 2008년 양사가 항공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무기한에서 10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약관을 개정하면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8년 7월1일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10월1일 이후 적립된 미 사용 마일리지가 내년 1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자동 소멸한다.

소비자들이 당장 내달 31일까지 미사용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항공사들은 마일리지 사용처를 홍보하고 프로모션을 강화하며 나섰다. 양사는 보너스 좌석, 좌석 승급, 로고 상품, 호텔, 렌터카 등 제휴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마일리지를 사용해 좌석을 구매하면 일정 마일리지를 페이백으로 돌려주는 행사를 마련하는 등 사용처 다양화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불공정’ 약관이란 논란을 잠재우진 못한 모양새다. 소비자주권시민위원회는 항공사 마일리지의 한정적인 사용처, 사용기간 제한, 양도 금지 약관을 비판하며 나섰다. 신용카드사, 은행 등 다수 업체에서 운영하는 마일리지 제도와 달리, 사용기회가 다소 제한적인 항공권에 시효를 둬 사용에 제약을 뒀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1마일 당 20원으로 환산할 경우 일반 현금 구매가보다 월등히 높은 제휴 상품 구매 역시 마일리지 사용의 문턱으로 작용한다.

이에 소비자주권은 항공마일리지 제도개선 의견서를 국토부와 공정위에 지난 7월 제출하며 항공사 약관의 독소조항을 삭제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항공마일리지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박준영 소비자주권 문화소비자센터 소장은 “등가의 원칙에 입각해서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데 마일리지 사용 기회가 지극히 한정적이라 소비자는 원치 않는 걸 사야하는 경우가 많다. 정당하게 얻어진 재화로서의 가치인데, 소비자 기책으로 못 샀다고 하는 건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약관을 둘러싼 논란은 항공사 마일리지를 두고 법적 성격을 달리 해석하는 소비자와 항공사의 입장 대립에서 비롯됐다. 항공사 측은 마일리지를 단순 마케팅 수단이나 혜택으로 풀이하는 반면, 소비자 측은 특정 항공사 및 그 제휴업체를 이용하는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재산권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변호사는 ​초기 항공 마일리지는 상용고객에게 제공하는 보너스였지만 마케팅 기법이 발전하면서 신용카드사와의 제휴 등으로 소비자에게 ‘채권’이란 인식으로 발전했다. 업계서 마일리지를 수혜로 보는 것은 사업 초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소비자 단체는 항공사들이 일방적으로 약관 개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권익을 주장하기 어려운 비대칭적 구조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또 실질적으로 독과점 체제가 굳어진 항공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더 유리한 약관을 제공하는 항공사를 선택할 기회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 변호사는 “항공시장은 양대 항공사의 독과점 구조가 자리 잡혔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약관 부당성이 판단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항공산업을 총괄하는 국토부는 항공사들의 ‘영업비밀’에 막혀 정확한 마일리지 운영 현황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업계는 양대 항공사가 전체 좌석 중 5% 안팎에서 마일리지 좌석을 제공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정확한 수치는 공개된 바 없다.

김도곤 국토부 항공산업과 과장은 “지난 2015년에 비하면 항공사들이 제공하는 마일리지 사용처는 확대된 편이다. 지속적으로 사용처 확대를 요청할 것”이라면서도 “여전히 항공사가 마일리지 좌석을 전체 좌석 중 몇 퍼센트 공급하는지 국토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예전에 마일리지 정책을 공개토록 하는 입법화 논의가 이뤄졌지만 통과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같은 문제의식에 공정거래위원회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공정위 대상 국정감사에서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업계 협의를 통해 더 넓은 범위에서 양도할 수 있도록 하거나 다양한 용도에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마일리지 소멸 시효를 앞두고 당장 효과가 가시적인 제도 개선책은 요원한 상태다. 공정위 측에서 해당 약관을 두고 법률적 검토에 돌입한다고 해도 내달 당장 약관 수정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려야 하는 까닭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관측되는 까닭이다.  

 

공정위 소비자정책국 관계자는 “항공사 마일리지 문제는 소비자가 10년간 소비자들이 제대로 사용처를 알지 못한 데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어느 한 단체나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기관, 법조계 등 함께 협조해야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당장 마일리지 소멸을 앞두고 항공사와 약관 효력을 다투는 소송에 대한 주장도 제기됐다. 홍훈희 변호사는 “공정위 측에서 약관 수정을 명령해도 항공사 측은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 단체 측에서 항공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기산점에 대한 재정립을 주장하는 소송, 혹은 항공사 마일리지의 양도성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시효를 둔 게 약관 조항이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소송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항공사가 마일리지의 일정 비율을 부채성 충당금으로 적립하는 까닭에, 적기에 소멸될 수 있는 영업상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아울러 약관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을 불식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 및 소비자 측과 협의를 이어가야 하는 점에 중점을 두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변호사는 ​항공사 입장에서도 항공 마일리지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한다. 소비자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질 좋은 서비스, 재화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 기회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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