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물자 반출 등 제재 예외 문제 여전…“남북 철도·도로 착공식·공동조사 연내 가능은 커져”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 모습.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한미 워킹그룹 첫 회의서 미국이 남북 철도·도로 공동조사에 대해 강력히 지지하겠다는 뜻을 보이면서 우리 정부가 목표로 삼고 있는 연내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 성사 여부에 주목된다. 지난달 15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11월 말~12월 초 착공식은 사실상 연기된 모습이지만, 미국이 철도·도로 사업에 지지하겠다는 뜻을 보인 만큼 남북 사업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남북은 지난 10월15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11월 말~12월 초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갖기로 합의했다. 다만 대북제재 예외 문제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난항 등의 영향으로 관련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정부는 연내 착공식을 위해 미국과 남은 쟁점을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받게 됐다.

우리 측 한미 워킹그룹 단장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20일(현지 시간)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첫 회의를 마친 뒤 “미국 측이 남북 철도 공동조사를 강력히 지지한다(strongly support)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남북은 지난 8월 판문점선언 합의 내용에 따라 경의선 북측 구간 운행을 포함한 철도 공동조사를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유엔군사령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유엔사가 반대한 데는 남북 철도·도로 공동조사를 위해 필요한 대량의 물자 반출이 대북제재에 위반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미국은 남북 철도·도로 협력 사업에 북한 비핵화, 한미 협의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이 한미 워킹그룹 첫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철도·도로 협력 사업에 긍정적 메시지를 보인 것과 언론 브리핑 형식으로 결과를 공유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측이 남북 협력 사업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 만큼 남북이 착공식 일정 수립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남북 철도·도로 사업에 강력히 지지하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지지하겠다면서 절차 또는 시기를 미국과 공조하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 철도 사업 자체를 거절하는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이 가시화된다면 미국 측에서 검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고위급회담 일정이 나와야 한다. 미국이 부정적 기조를 보이는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남북 철도 부분은 정부 예산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수익성 등에 따른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동조사와 착공식은 대북제재와 무관하기 때문에 한미 공조 따라 진전 가능하다”며 “연내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 공동조사는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 비핵화 진전과 맞물린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

미국 측이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철도·도로 사업 등 남북 경협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북미 대화가 여전히 교착 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연내 착공식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20일(현지시간)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의 상호관계에 뒤처져선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말했다”며 남북관계가 비핵화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며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진전 여부에 따라 남북 철도·도로 사업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협상의 진척이 없다면 착공식이 이뤄졌다고 해도 남북이 본격적인 철도 현대화 작업에 착수 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남북 공동 협력 사업을 진행하려면 현행 대북제재 예외 또는 면제가 조건으로 여겨지는데 현 상태에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에 응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한미 워킹그룹에서 논의된 사항을 북측에 전하고 관련 일정 협의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남북 철도·도로 연내 착공식 개최에 무리가 없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우리 정부가 그동안 미국에게 바라던 워딩이 철도 사업에 대한 적극 지지였다. 일단 우리 정부는 남북 철도·도로 사업이 대북제재에 위반되지 않도록 조사를 거치겠다는 입장”이라며 “철도 사업은 지역적 문제인데 미국은 기존 입장 그대로 남북 교류를 지지하면서도 대북제재를 위반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며 비핵화가 먼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이어 “한미는 워킹그룹이라는 채널을 통해 양국 간 일상적이고 실무적인 접촉을 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여 진다. 다만 한미 양국이 워킹그룹을 통해 소통은 하고 있지만 이견을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협상 전략을 갖고 한미 간 의견을 조율하면서 북한과 끊임없는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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