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을 위한 개인 희생 당연시 하는 풍조 문제 있어

“위원회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직원이 잘못한 것으로 수정해 주실 순 없나요?”

기자는 최근 한 행정기관의 고위 간부가 ‘거짓 공적’을 이유로 서훈이 취소됐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어떠한 거짓이 있었는지 당사자와 이 기관 대변인실은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지 않았다. 다만 당사자와 기관은 절차적 하자가 존재했다고 해명했다. 또 서훈을 추천한 공적심사위원회가 사전에 결격사유를 파악하지 못한 일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인사담당자는 이번 일로 징계성 발령이 났다.

보도가 나간 뒤 대변인실로부터 받은 전화는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사 내용 일부를 수정해 줄 수 있느냐는 요구였다. 공적심사위원회의 잘못이 아니라 결격사유가 존재하는데도 서훈을 신청한 직원의 잘못으로 수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속이 뻔히 보였다. 꼬리 자르기가 아닌가. 특정사안을 예단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엔 감정적 동요가 먼저 밀려왔다. 정중히 거절했다고 기억하지만 분명 목소리가 높아졌을 것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없기 때문에 기사 수정도 불가능합니다. 더 해명하실 내용이 있다면 기사에 보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신경을 써줘 고맙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내왔다.

요청의 배경을 헤아려 보면 대변인실 관계자도 ‘윗선’의 지시를 따랐을 것이다. 조직이 비판받는 것보다 개인이 희생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기자는 대변인실 관계자의 요청에 동요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상황 대응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물론 조직의 대응 방법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 직원 개인의 잘못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을 파악하지 못한 시스템의 잘못은 더욱 크다. 시스템의 잘못을 개선하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겁하다. 우리 사회는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너무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일까. 조직은 개인에게 충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개인은 조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는 것일까.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표현은 당사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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