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단속이 역효과 일으킬 수도…감정 이해 우선

분노가 먼저였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 끔직한 자해 사진과 동영상들이 버젓이 노출되고 있었기에. 이것이 10대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고 있다니. 플랫폼 업체들의 수수방관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모니터링, 관리 부실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취재에 돌입했지만 전문가에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문가는 무조건적인 차단이 과연 자해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 게재는 유해하다고만 생각한 기자에게 충격이었다.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이 올리는 자해 인증샷은 심심풀이나 재미보다는 그만큼 삶의 무게가 버겁다는 일종의 SOS 신호다. 이 신호를 보낼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이런 기회마저 원천 차단해 버린다면 이들이 위험한 음지로 모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고 전문가는 조언했다.

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녀의 손목을 살피라는 공지라 내려올 만큼 자해는 올해 크게 늘었다. 학교 차원에서도 큰 문제로 부각돼 초등학교에서는 ‘유해성 자해’라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애정결핍이 심하고 감정기복도 커 친구나 선생님한테 엄청 집착하는 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은 자해하는 사진을 찍어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더라”며 “급우들이 해주는 걱정으로 교우관계에서 우위에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죽을 의도 없이 고의적으로 자신의 신체조직을 손상시키는 자해는 ‘비자살적 자해’로 보고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행위는 치사성이 낮으나 직접적이고 반복적이다. 따라서 크게 상해를 입지 않는 한 한 번 자해를 시작한 청소년들은 쉽게 자해를 그만두지 못한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심리적 어려움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 자해를 선택했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싶어 이런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존재한다. 그래서 흉터를 보여주거나 인증샷을 올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자살이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바라는 행동이라면 자해는 살아서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인증샷을 통해서는 관심을 얻고 걱정을 받는다. 어쩌면 이것이 이 아이들의 또 다른 생존방식이다.

전문가는 언론이 자극적으로 다뤄주지 않길 바란다고 재차 부탁했다. 자해 여부나 인증샷 게재보다는 자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힘듦을 헤아리라는 얘기였다. 특히 한국의 아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쉽게 놓이기 때문에 정서적 지지가 더욱 필요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런 아이들에 대해 비난할 수 없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플랫폼에 널린 관련 콘텐츠들을 자정하는 노력은 해야겠지만 분명 무조건적인 차단은 답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왜 강력하게 제재하지 않느냐고 플랫폼을 탓할 수도 없다. 플랫폼 측에서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갖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전문가 말처럼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해야 한다. 바꾸려는 강압적인 태도보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리적 출구를 찾아주는 데에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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