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까지 올린다는 인형뽑기방…단속 '전무' 현실 속에 탈세도 버젓이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은 법에 따라 작동한다. 택시의 승차거부를 신고할 수 있는 것도, 쓰레기를 몰래 버리면 벌금을 맞는 것도 모두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시사저널e>는 [집요한柳]​를 통해 법이 있음에도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장을, 심층 취재를 통해 보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그곳을 움직이는 손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법 위에 있는지 밝힌다. [기자 주]


30~4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형뽑기방이 고가 경품으로 사행성을 조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문을 닫아야 하는 심야 시간임에도, 환한 불을 켜고 버젓이 운영하고 있는 그곳이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형뽑기방은 게임산업법에 의해 규제를 받지만 이 법은 전혀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을 들여다 봤다.

 
◇ “단순히 ‘인형뽑기’가 아닙니다.”


10년 가까이 인형뽑기업에 종사했다는 이진영(가명‧39) 씨는 인형뽑기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는 “이 업의 가장 큰 매력은 현금이 매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씩 들어온다는 사실”이라며 “이 곳 경기가 좋을 때는 이 업(인형뽑기)으로 건물을 올렸다는 말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서울‧부천‧인천 지역에 총 10여 곳에 인형뽑기방을 운영하고 있다. 로드형(길거리에 설치하는 인형뽑기)​이 주를 이룬 초창기 인형에 한정됐던 경품은 점포형 뽑기방으로 바뀌면서 고가의 홍삼‧피큐어‧드론‧건강식품 등으로 넓어졌다. 이 씨는 “‘로드’로는 고가 경품을 넣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점포형으로 바뀌며서 단속도 거의 없고 탈취 위험도 적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사행성 게임인 ‘인형뽑기’를 유통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잘 팔린 상품을 중국 공장에 요청하면 (겉보기에) 똑같은 상품을 싸게 만들어 수입해 들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입형뽑기 기계에서 고가의 ‘경품 뽑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중국산 OEM(주문자생산방식) 짝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중국에서 대량의 상품들이 들어오면 그것이 전국으로 풀린다. 이런 식으로 이곳에서 움직이는 자금은, 일반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규모”라고 말했다. 단순히 사행성 게임이 아니라는 이 씨의 말은 허언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설득력 있어 보였다. 이 씨는 “장난감, 의류 등 국내 제조업체들이 도산하면 그 수많은 재고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온다”면서 “10만원대 나가는 상품도 업체가 망하는 순간 몇 천원으로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불경기는 있어도 망하지는 않는다.”

3~4년 전, 인형뽑기 게임이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인형뽑기방은 한 때 치킨집, 빵집을 대체할 퇴직 사업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현재는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매물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사양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씨의 생각은 달랐다. 이 씨는 “경쟁이 치열해 한 때 벌어가는 돈도 적었지만 지금은 모두 떨어져 나갔다”면서 “오히려 지금이 더 낫다”고 말했다.

‘지금이 낫다’는 이 씨의 말은 단순히 경쟁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인형뽑기는 도박처럼 중독성이 있다. 바로 그 중독성 때문에 불경기는 있어도 망하지는 않는다. 인형뽑기를 주로하는 세대가 자금사정이 비교적 여유로운 30~40대인데 시간은 흐르고 그 세대(30~40대)는 다시 올라온다”고 말했다. 

 

왼쪽은 로드에 설치에 인형뽑기기계, 오른쪽은 점포형 인형뽑기방/사진=유재철 기자
◇ 단속 없는 그곳…‘눈 먼 돈’ 탈세 정황도
인형뽑기방은 과거 ‘바다이야기’처럼 불법 사행성 업소가 아니다. 게임산업법에 따라 심야 시간(0~06시)대에 영업을 하지 않고 저녁 10시 이후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하면 큰 제재 없이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무용지물이다. 운영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허가취소도 가능하지만 취소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운영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찾은 ‘고양시 덕양구 원흥지구’의 3곳 인형뽑기방은 자정이 넘었지만 업장을 밝힌 불은 꺼지지 않았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이들의 출입도 간혹 있었다.

고양경찰서 생활질서계 관계자는 “지적한 사안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인력 등 문제로 제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구대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인형뽑기방 외에도 노래방 등 점검해야할 곳은 상당히 많다. 현실적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현금 장사’인 인형뽑기방은 과세당국의 소득파악이 쉽지 않다.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 발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신고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업계에서는 ‘인형뽑기’로 벌어들인 소득을 ‘눈 먼 돈’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과세당국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세청 관계자는 “실태파악을 통해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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