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고위급회담 연기·핵 신고 등 이견 차 탓 분석…전문가 “세부적 조율 이뤄지지 않은 게 드러났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 모습. / 사진=연합뉴스

미국 국무부가 7일(현지시간) 당초 8일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회담을 돌연 연기했다. 한·미 정부는 고위급회담 연기 결정 배경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북미 양국이 상호 다른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이른바 시간벌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국무부는 11·6 중간선거 직후인 이날 자정쯤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로 낸 성명을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뉴욕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 양측의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해 고위급회담이 연기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 국무부의 발표는 전날 “폼페이오 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을 만나기 위해 오는 8일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함께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돌연 연기를 결정해 여러 추측이 오가고 있다. 미 국무부는 회담 연기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또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된 배경에 대해 “미국은 북으로부터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설명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에게 알려왔다”며 “아직 폼페이오 장관과 전화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일정을 조정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회담 개최에 난색을 표명해 회담을 연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동안 북한은 본격적인 비핵화 이행 전 보상을 요구했지만, 미국이 제재 완화를 비롯한 어떤 보상도 즉 상응조치를 하는 것을 꺼린 것이 결국 회담 연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언론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즈(NYT) 등은 8일(현지시간) 북미 고위급회담이 전격 취소된 데 대해 ‘제재완화와 핵 신고 등을 둘러싼 이견’을 배경으로 지목했다.

NYT는 이날 “회담 연기는 북미 간에 상대방에 대한 요구와 기대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WP도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수개월간 외교가 정체돼 있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고위급회담 연기를 발표하면서도 2차 북미정상회담이 내년 초 개최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을 볼 때, 북미 간 협상 판이 깨지는 국면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북미 간 서로 전략을 짜기 위해 시간을 더 갖는 상황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김병민 경희대 행정학과 겸임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내년 초에 개최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충분한 시간을 갖겠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지금 번영에 집중하고 있는데, 번영을 위해선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를 쥐고 끝까지 시간을 벌면서 비핵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생각”이라며 “(회담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는 없지만, 북한이 고위급회담 연기를 통보했다는 데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뉴욕에 갈 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가져가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핵심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일정이 맞지 않다보니 북한이 먼저 회담 연기를 통보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측이 고위급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 ‘빈손 방미’가 되기 때문에 회담을 연기한 것이다. 북미는 다음 회담까지 의제 조율에 나설 것”이라며 “또 스티븐 비건 대표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빅딜을 이뤄내야 하는데, 결국 세부적인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게 이번 기회에 드러난 것이다. 북미가 서로 조정한 후에 고위급회담 일정을 다시 잡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고위급회담 연기 자체는 크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재선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보려는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살아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전략을 세울 것이다. 북한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만큼 전략을 다듬기위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최 평론가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까지는 2년의 시간이 남았다. 우려되는 것은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까지 국내 정치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북한 핵 문제 등을 뒤로 미룰 수 있다”며 “북한이 만약 이전처럼 도발을 하면 미국이 압박 또는 유화정책을 펼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고위급회담이나 2차 북미정상회담을 미끼로 북미가 힘겨루기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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