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실태조사 결과 토대로 입법화 추진 계획”…노동계 “근로시간 단축 무의미”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경영계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연내 확대를 사실상 결정하면서 고용노동부도 탄력근로제 연내 확대를 위한 후속조치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사실상 주 52시간 근로시간이 무력화된다고 반발하고 있어 향후 새로운 갈등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과 여야 5대 원내대변인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열고 탄력근무제 단위 기간 확대 내용이 담긴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법안 처리 및 예산 반영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한다. 기업에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보안입법 조치를 마무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탄력근로제는 근로시간을 하루·일주일 단위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이 많이 몰리는 기간에는 최대 주당 64시간까지 일하고, 한가할 땐 일하는 시간을 줄여 주당 평균 52시간을 맞추면 된다.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는 2주에서 최장 3개월까지다. 이때 초과근무수당은 주당 40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만 지급한다.

경영계는 지난 7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계기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요구했다. 계절적 수요에 따른 집중 노동이 필요한 업종의 경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을 지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탄력근로제 시행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300인 이상 기업은 ‘노무 관리 어려움(56%)’을 가장 많이 거론했다. 또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희망 근로자가 없다’는 이유로 시행을 미루고 있기도 했다.

이번 여·야·정 합의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되면 경영계는 부담을 덜게 된다. 산업 특성이나 경기 상황에 맞춰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노동시간을 투입하고 일감이 없을 때는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 전체적으로 평균 52시간이 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면 주당 노동시간 한도가 높아져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초과근무수당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확대되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한 일부 노동시간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사업장에서 3개월간 일이 몰리고 3개월간 한가하다고 가정하면 현행 제도 내에서는 적어도 3개월은 초과근무수당을 최대 주당 12시간까지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가 6개월 이상으로 늘어나면 사업장에서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 평균 노동시간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초과근무수당도 적게 책정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아직 많은 고용주들이 (탄력근로제를) 이득보다 관리비용이나 부작용이 많은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협업이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며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것 외에도 산업이나 사업체 특성을 고려해 제도가 도입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러한 경영계와 노동계의 애로사항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은 지난 6월 발표한 탄력근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뿐이다.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현행 기준법상 주당 노동시간 한도인 52시간에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단위 기간 2주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주당 노동시간이 최대 60시간으로 늘어나며, 단위 기간을 3개월로 적용하면 최대 64시간으로 증가하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 연내 추진을 위해 제도 보완을 검토 중이다. 특히 고용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이 입법화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노동계가 요구한 업종별 적용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계는 노동자에 대한 임금 손실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우려하는 부분이 최소화하거나 발생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논의할 계획”이라며 “현 상황에서, 또 앞으로도 여러 가지 긍정적, 부정적 입장이 있을 텐데 지금 고용노동부는 실태조사를 파악하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입법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안 자체를 업종별로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어떤 업종에 속하느냐 하는 것까지 다 구분하기는 현재 근로시간 틀 내에서 쉽지 않기 때문에 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은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오는 17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강력 투쟁 방침을, 민주노총은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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