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제작사 입증 책임 가중·고의적 결함 은폐 시 최대 5배 배상 책임…“배상 수준 낮고 일부 규정 엄격해 아쉬워”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올해 BMW 차량 연쇄 화재로 인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완성차의 경우 소비자와 제작사의 정보 비대칭이 커 제작사의 선제적인 결함 입증 책임이 요구된다는 주장이 힘을 실었다.

 

다만 이번 개정안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계, 소비자단체 등은 당초 논의된 수준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졌으며, 집단소송제와 연계 없이 반쪽짜리 법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될 경우 손실이 예상되는 자동차 업계는 남용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기존 업계의 우려와 반발을 넘어 전향적인 성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6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박순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지난 1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토부가 앞서 발표한 '자동차 리콜 혁신 방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됐으며, 자동차 분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자동차 제작사 등이 안전상의 결함을 인지하고서도 즉시 시정하지 않은 탓에 생명, 신체 및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입힐 경우 그 손해의 최대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사실관계 입증 책임을 덜고, 차량의 제작 결함 여부 입증 책임을 제조사 측으로 돌린 점도 특징이다. 개정안엔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성능시험대행자가 차량 결함이 의심돼 조사할 경우 제조사는 자동차에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미제출 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개정안은 자동차 제작사가 차량 결함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판매해 소비자 피해가 불거지는 사례를 막기 위해 발의됐다. 올해 BMW코리아가 차량의 화재 유발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도 차량 판매를 강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더욱 탄력을 받았다. 지난 8월 BMW코리아는 잇단 화재의 원인을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결함으로 지목했으나, 2016년에 이미 EGR 부품 관련 환경부 리콜을 실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소비자단체, 학계 등은 BMW코리아의 결함 은폐, 늑장 대응 의혹을 제기하며 자동차 분야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번 개정안은 자동차 분야에서 기업의 고의적 결함 은폐 사실이 밝혀질 경우 손해의 최대 5배 배상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선 유의미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러나 일각에선 여전히 이번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당초 국회서 논의됐던 배상책임 수위보단 다소 낮아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징벌적 벌과금제의 손해배상액 수준은 피해액의 5배~10배에서 논의되다가 결국 5배로 정해졌는데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본다. 당초 논의됐던 수위보다 낮아진 것으로 보아 기존 업계와의 타협적 태도를 취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BMW피해자 모임의 소송대리인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5배 배상은 논의됐던 배상 수위 중 가장 적은 수준이다. 국내 손해배상액 자체가 미국에 비해서 20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다섯배를 정해도 금액이 크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의 일부 기준이 다소 엄격하게 규정돼 입법 취지와 달리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 변호사는 "배상 범위를 보다 확대하기 위해 일부 규정이 완화될 필요도 있다. 일반 소비자는 기업의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부분에 더 완화된 기준도 도입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배가 부과되는 요건이 더 넓어, 기업의 고의성 외에도 ‘무모한 무관심’(Reckless disregard)으로 인한 무법한 행위에도 책임을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조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고의성 여부는 객관적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인 까닭에 법리 다툼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집단소송제를 활성화하고 이와 연계해 보다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호근 교수는 “집단소송제와 연관해야 개별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도 배상을 받을 수 있다. 현행 비활성화된 집단소송제와 적절한 연계가 어려워 실효성이 입법 취지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손배제 개선안은 아쉬움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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