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조원 이상 인하 방침…인력 구조조정 불안도 커지고 있어

 

서울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소비자가 물 한 병을 구입한 뒤 카드 결제를 요청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e
“카드수수료 0%가 되도 정부는 만족하지 않을 것 같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무리한 수수료 인하 요구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카드 수수료 인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카드 수수료 인하 압박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카드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 1조원 이상의 카드수수료 인하 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1조원 이상 인하 방침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는 3년 전인 2015년 조정 당시 수수료 절감 추정액 670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카드사들에 대한 카드수수료 인하 요구는 이번만이 아니다. 카드수수료는 지난 2007년 ‘신용카드 체계 합리화 방안’이 나온 이후 최근까지 11차례나 인하됐다. 2012년부터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3년마다 수수료를 재산정하기로 했지만 우대수수료율 등은 감독규정 변경만으로 바꿀 수 있어, 사실상 수수료는 수시로 인하돼 왔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수수료율 0.8%가 적용되는 영세가맹점 기준을 ‘연간 매출액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1.3%를 적용받는 중소가맹점 기준을 ‘연간 매출액 2억∼3억원’에서 ‘3억∼5억원’으로 완화한 바 있다.

지난 7월에는 밴수수료 산정방식을 기존 정액제에서 결제금액에 비례해 부과하는 방식인 정률제로 개편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번 밴수수료 정률제 적용으로 평균 결제금액이 2만4000원인 소액결제업체는 수수료율이 평균 2.22%에서 2.00%로 인하될 것으로 추산했다. 기존 2.5%인 카드 수수료 상한도 2.3%로 0.2%포인트 인하됐다.

아울러 내년부터 지불결제사업자(PG)와 결제대행 계약을 맺은 온라인 사업자와 개인택시사업자가 연매출에 따라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소규모 신규가맹점 수수료 환급제도도 내년부터 도입된다. 신규가맹점은 연매출 정보가 없어 창업 후 6개월간 업종별 평균 수수료율을 적용받았다. 앞으로 신규 가맹점은 영세·중소가맹점으로 분류될 경우 우대수수료율보다 더 낸 수수료 차액을 환급받게 된다.

이처럼 정부의 계속되는 수수료인하 정책으로 인해 카드업계는 최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추가 인하 방침을 보이자, 카드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카드사들의 수익률은 최근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업 카드사 8곳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2268억원으로 전년보다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해 카드사들의 순익은 지난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그간 정부의 카드사 압박을 통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은 적어도 자영업자 입장에서 볼 때 효과적이었다”며 “그러나 향후 정부가 추가적인 수수료를 인하할 경우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카드사는 밴사 또는 결제대행업체(PG)에 비용을 전가하고, 밴사나 PG는 관련 서비스 질을 낮추거나 가격을 높이고 중소 자영업자와의 가맹 계약을 기피할 수 있다”며 “과도한 정부 규제가 카드사의 위험관리를 느슨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향후 시스템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카드사들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문제 삼으며,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추가로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카드사가 수익보다 외형확대 중점을 두고 경쟁하면서 마케팅 비용은 2014년 4조원에서 지난해 6조원으로 늘었다”며 “마케팅 비용은 다 가맹점 수수료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또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맞춰 제대로 된 적격비용을 산정하겠다”며 “가맹점별로도 마케팅 비용과 부담하는 수수료가 합리적으로 배분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카드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카드사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은 카드상품에 탑재된 할인이나 혜택 등 부가서비스에 사용되고 있다. 카드상품의 부가서비스 비용은 카드사가 지출하는 전체 마케팅 비용의 70%를 넘어서고 있다. 결국 마케팅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던 혜택을 줄여야만 한다. 문제는 또 있다. 금융감독원의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카드상품에 탑재된 부가서비스를 최소 3년간 유지해야 하며 부가서비스 축소를 위해선 감독당국의 약관 변경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금감원은 이를 한차례도 승인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업계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악화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신한·KB국민·롯데·우리·하나·비씨 등 국내 주요 카드사 노조로 구성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최근 여론몰이식 수수료 인하 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 카드수수료가 계속 인하된다면, 수익 감소로 인해 향후 카드사들의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카드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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