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중국 항공사로 이직 가속, 외국인 항공사 영입 차질…“경력 조종사 충원 위해 제도 개선 필요”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내 항공업계가 양적성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조종사 등 전문인력 수급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항공사는 외국인 조종사 영입을 통해 당장의 인력 수급에 대응하고 있으나 향후 업계 경쟁이 가시화됨에 따라 안정적인 신규 인력 수급 구조가 자리 잡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0일 송석준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외항사로 이직한 조종사는 39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4년엔 24명에 그쳤으나 2015년 92명, 2016년 100명, 지난해 145명으로 3년만에 6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이들 조종사가 이직한 국가는 중국이 전체의 85.5%(336명)를 차지해 눈길을 끈다. 업계선 급속도로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 항공사들이 자체적으로 전문인력을 수급하지 못 하며 높은 연봉과 복지조건을 앞세워 해외 조종사 ‘모셔가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항공사들은 중국 정부 지원금을 받아 크면서 성장속도가 가팔랐다”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것은 물론, 당장 조종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높은 연봉 등을 제안할 수 있는 점에서도 일부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조종인력의 해외 이직이 잇따르는 한편, 국적 항공사들은 기단 확대에 나서면서 정작 조종간을 잡을 인력이 사라지는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국적 항공사 9개사가 보유한 기단은 총 387대로, 지난해 말 369대보다 4.8% 기단 보유대수가 증가했다. 

이에 국적사들은 기장‧부기장 자리에 외국인 조종사를 수급하며 충원에 나선 모양새다. 이정미정의당 의원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국적 항공사의 조종사는 총 6087명이며, 이중 9.6%(586명)는 외국인 조종사로 집계됐다. 

특히 대한항공은 소속 조종사 2757명 중 394명(14.3%), 아시아나항공은 1529명 중 160명(10.5%)이 해외 인력업체로부터 파견된 외국인 조종사다. 반면 제주항공 외 4곳 항공사 외국인 비율은 전체 1801명 중 32명(1.8%)에 불과했다. 해외 인력업체를 통해 인력을 수급하는 대형항공사들과 달리 저비용항공사(LCC)는 직접고용의 형태로 외국인 조종사를 고용하고 있어 다소 고용 수준이 저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항공업계서 조종사 인력난은 수년째 해결이 요원한 문제다. 최근 10년간 항공업계는 급성장을 거듭하며 기단을 대거 확보하는 등 사업 확장에 나섰지만, 그에 비해 조종사의 양성 속도가 더뎌 불균형이 심화된 까닭이다. 통상 자격증을 따더라도 항공사가 요구하는 훈련시간을 채워야 하며, 항공사 입사 후 기장에 임명되기까지도 LCC는 약 4~5년, 대형항공사는 7~8년가량 걸린다. 여기에 항공사들이 조종사 자체 양성 대신 경력 조종사 채용을 선호하는 까닭에 자격증을 따고도 취직되거나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적체인원만 증가했다. 지난 2016년 국내 시장에 공급된 조종사는 1101명이었지만, 국적 항공사 채용은 697명에 그쳤다. 


국토부는 오는 2022년까지 약 3000명의 조종사가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국토부는 관계기관 및 항공사 등과 ‘조종인력 양성체계 개선방안’에 협력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항공사들이 조종사를 선선발 후교육 체계로 전환하도록 하고, 인력 양성·수급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우수 항공사에는 슬롯·운수권 배분 시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성과는 비가시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인력 수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다만 당장의 경력 조종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외국인 조종사를 영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이 원활하게 경력 조종사를 영입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조종사 수급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당장의 조종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항공사들의 외국인 조종사 영입에 한시적으로 문을 열어 놓는 방안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외국인 기장을 채용하기 위해선 국토부 건별 심사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 대신 국토부가 명확한 채용 기준만 정해주고 항공사가 자율 채용‧운영하도록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신규 사업자 진입, 항공기 수요 증가 등 대외 환경 변화와 함께 조종사 및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항공 여객 호조세와 함께 최근 국적 항공사를 중심으로 노선 취항, 기단 확보 경쟁이 가열되는 점도 궤를 함께 한다. 

 

글로벌 항공 관련 기업 보잉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향후 20년간 동북아 지역에서만 항공 교통량이 연간 2%씩 증가, 올해부터 오는 2037년까지 항공기 1450대가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항공업계의 가파른 성장세와 함께 신규 항공사의 진입이 가시화되면서 점진적으로 조종인력 수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준세 중원대 항공학과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조종사 인력난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국내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은 넘쳐나는 상태다. 작년에만 1460여명이 자격증을 땄고 작년에 취업을 하지 못해 적체된 인원도 많다. 교육기관에서 선제적으로 뽑는 인원이 연간 300명, 자격증을 따서 들어가는 인원이 100명 정도 된다. 조종사가 모자란다는 말은 사실상 자격증을 딴 이후 훈련 및 교육을 거쳐 투입될 수 있는 인원이 적다는 뜻이다. 특히 LCC의 성장세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이 같은 인원 충족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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