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원 “남매간 자금 융통거래 ‘증여’로 볼 수 없어”

국세청 세종청사/사진=유재철 기자

#부인과 다툼이 잦았던 A는 이혼을 대비해 갖고 있던 현금의 일부를 누나에게 맡겼다. 재산분할청구를 대비한 조치였다. 마침 A의 누나도 채무 변제에 쓸 돈이 부족해 A의 돈을 일부 빌리기로 했다. 얼마 후 관할세무서가 A의 누나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A가 맡긴 돈을 증여로 판단해 세금을 추징했다.

민법에서 증여는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증여의 상대방이 수증의 의사를 표시해야 증여 행위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법은 다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증여를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형식·목적 등과 관계없이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을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타인에게 무상으로 이전(현저히 저렴한 대가를 받고 이전하는 경우를 포함)하는 것 또는 기여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민법에서 금전의 이전을 증여로 보지 않아도 세법은 이유를 막론하고 증여로 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과세관청과 납세자 간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납세자는 민법 규정을 들어 ‘증여받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과세관청은 ‘어쨌든 증여’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A는 누나에게 돈을 맡긴 이유를 “배우자와 불화로 이혼시 재산분할에 대비해 배우자에게 자금흐름을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돈을 받은 A는 “선의의 관리자로서 동생의 돈을 관리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A가 동생의 돈을 일부 채무변제에 쓴 것에 대해선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제3자에게 했는데 관련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당시 여유자금이 있던 동생 돈을 빌린 것으로서 증여받은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처분청은 “A의 남동생이 그의 배우자와의 이혼 등 재산분할 문제가 정리되면 쟁점금액을 변제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변제기일을 특정할 수 없다”면서 “채무이행의 변제기일이 정해지지 않고 차입이자의 지급내역이 금융거래로 확인되지 않는 등 사회통념상 금전소비대차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세심판원의 판단은 “증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판원은 “A와 동생은 직계존비속이 아닌 독립적인 가구의 남매지간으로서 거액을 증여할 합리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면서 “쟁점금액의 이전은 상증세법상 ‘증여’로 보기보다는 남매간의 자금의 융통거래로 보인다. 처분청이 이를 증여로 보아 과세한 이 건 처분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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