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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서울 논현동 술집 남녀공용 화장실을 갔던 박미영(가명)씨는 그날의 끔찍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화장실을 뒤따라 들어온 한 남성이 자신을 때리고 성폭행을 시도한 것.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해당 남성과 함께 경찰서로 간 박씨는 더욱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화장실에서 태연하게 “소리 지르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던 그 남성은 갑자기 경찰에게 자신이 정신질환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여느 손님들과 다름없이 술자리를 즐기던 그 남성이 갑자기 사리분별 못하는 심신미약자 행세를 한 것이다.

형법 제10조 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심신미약 감형의 취지는 간단히 말해 자신의 행동이 범죄인지 제대로 인지조차 못한 상태에서 저지른 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거의 모든 강력범죄자들 사이에서 심신미약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검찰은 8세 여아를 성폭행했던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술을 마셔 심신미약상태였다는 조두순 측 주장을 받아들여 형량을 깎아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두순은 그 이전에도 20대 여성을 성폭행했다 붙잡혔으나, 당시에도 술을 마셨다고 주장해 심신미약 감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강력범죄 중 피고인이 심신미약을 주장하지 않는 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학생 딸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아빠’ 이영학과 8세 인천 초등생을 살해한 여고생, 또 최근 강서구PC방 살인사건을 일으킨 김성수 역시 모두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다.

심신미약 감형이 법에 보장돼 있는 것은 맞지만 심신미약을 적용해주는 것은 최종적으로 판사다. 한 변호사는 “심신미약을 주장해도 판사가 본인 판단 하에 적용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더 범죄자들이 심신미약 카드를 꺼내드는 건 그만큼 법정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아닐까. 범죄를 저지른 이후 경찰 눈을 피하려 노력하고 피해자를 협박하고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계속 심신미약을 적용해줘야 하는 것인지 법원도 이제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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