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둑잡아라’ 입법·정책개발비 공개 “연구비 줬다가 돌려받아”…“국회사무처, 용역 적절성 검증 안 해”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으로 여겨지는 ‘소규모 정책연구용역’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 사진=연합뉴스

국회가 특수활동비에 이어 입법·정책개발비마저 쌈짓돈으로 사용한 정황이 밝혀졌다. 국회사무처에 연구용역의 필요성, 적절성을 검증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 예산 사용 내역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근본적으로 선거제도 자체를 청렴성을 높이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 19일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는 정보공개청구와 소송으로 2016년 6월~2017년 5월까지의 국회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 증빙 자료를 공개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된 것은 151명 의원들이 발주한 338건의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이다. 여기에 사용된 예산은 12억982만7040원이었다.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은 국회의원들이 예산 500만원 이하로 개별 발주할 수 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일부 국회의원들은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을 통해 연구용역비를 지급했다가 돌려받았다. 세금도둑잡아라는 이 경우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좌진의 친구에게 연구용역 3건(1220만원)을 발주했다가 돈을 다시 돌려받았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도 연구용역비 600만원을 돌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황 의원은 2017년 유 아무개씨에게 농산물 이력추적관리제도 정책제언과 연안공영제 보고서를 각각 300만원에 발주했다. 세금도둑잡아라는 이 두 건 모두에 황 의원실이 유 씨에게 연구비 600만원을 돌려받았다고 했다. 이에 황 의원실은 국정감사 중이라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거운동을 도와준 사람이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한국경영기술포럼에 2012-2017년 4000만원(8건)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그러나 8건 중 2건은 100% 다른 연구를 표절했다. 백 의원은 대학생인 입법보조원에게 500만원의 연구용역비를 지급했다가 돌려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은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을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특수관계자에게 맡긴 경우도 많았다. 주로 전현직 인턴과 보좌진, 아르바이트 대학생, 의원과 보좌진의 지인 등이었다.

강석진 한국당 의원은 아르바이트 대학생에게 ‘올바른 보건의료정책을 위한 현안대책 제언’이라는 용역을 발주했다. 비서진의 배우자(제약회사 주임)에게 ‘보건복지부 주요 현안에 대한 분석 및 정책제언’이라는 제목의 용역을 2건 발주했다. 비서진의 형에게 ‘의료산업 발전방안을 위한 정책제언’, ‘국민먹거리 안전을 위한 정책제언’이라는 제목의 용역을 발주했다.

서청원 한국당 의원은 토목엔지니어링 업체 상무에게 ‘북핵 위기를 반영한 대북 정책 개선 방안연구’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한 토목회사 과장에게는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전직 인턴비서에게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이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의원 친구에게 3건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김학용 한국당 의원은 전직 인턴비서에게 ‘2016년도 정책설문조사’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또 다른 전직 인턴비서에게 ‘방치된 폐사지 문화재적 가치복원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인턴에게 2건의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연구비를 지급했다가 돌려받은 경우는 명백하게 형법상 사기죄다. 또 실제로 연구용역을 수행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있는 경우도 범죄 혐의가 있으므로 수사가 필요하다”며 “오는 24일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하승수 대표는 “국민세금으로 만든 정책연구용역 원문을 공개하면 더 많은 부정행위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을 공개하면 보고서 표절,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보고서 작성자가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실이 발주한 소규모 연국용역보고서 원문은 국회사무처가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는 원문이 공개될 경우 의원 입법 및 정책개발활동을 제약한다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 대표는 “정책연구용역이 잘못된 건에 대해 자금 출처나 흐름에 대한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며 “국회의 모든 예산이 공개되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 대표는 근본적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를 바꿔야 국회 투명성과 청렴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국회 내부에서는 이러한 예산 사용의 부정행위에 대해 감시가 안 된다. 서로 봐주기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국회 예산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덴마크나 스웨덴은 다양한 정당이 원내로 들어가 정책 뿐 아니라 부패 없이 투명하게 활동하는 투명성으로 경쟁한다. 부패없고 밥값하는 국회가 되려면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300명의 전체 의석 가운데 253명의 지역구 의원은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뽑힌다. 1등 후보로 가지 않은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다. 이에 국회 안에 다양한 출신 의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주 시작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선거제 개편을 논의할 계획이다. 특히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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