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이 아니고 발견이다.

(왼쪽부터)오렌지, 자몽, 감귤과 미네랄의 향이 조화로운 이탈리안 내추럴 와인 비앙코, 말린 장미 꽃잎같은 컬러와 짭조름하고 시큼한 맛이 매력적인 루시 마고, 내추럴 와인의 개성을 즐길 수 있는 섬세한 향과 투명하고 붉은 컬러가 매력적인 로사토 라살라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내추럴 와인 전문바 슬로크에서는 이 모든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내추럴 와인이 국내 미식계의 이슈로 대두된 것은 일부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추럴 와인과 음식을 페어링해 선보이기 시작 했을 때부터인 것 같다. 내추럴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문턱이 훨씬 낮아졌다. 홍대 앞, 이태원, 을지로, 성수동, 강남 등지엔 내추럴 와인만을 선보이는 크고 작은 바들이 있다. 내추럴 와인은 유행이라기보다는 지금의 서울을 말하는 새로운 문화의 일부다.

 

그래서 대체 내추럴 와인이 뭐냐고? 사실 소름끼치게 놀라운 점은 없다. 국어사전에서는 기본적으로 와인을 이렇게 정의 한다. ‘포도의 즙을 발효시켜 만든 서양의 술.’ 단순히 포도의 즙만을 발효시킨 것은 아니고 발효를 위해 이스트를, 산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황을 첨가한다. 내추럴 와인엔 그런 첨가물 이다. 유기농 포도 이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고 발효시켜 인공 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양조한 와인을 말한다.

 

생산 방식이 기존 ‘와인’이라 불리는 것과 다르니 맛도 역시 다르다. 내추럴 와인은 신맛과 떫은맛이 강하다. 지난 7월 오픈한 슬로크의 대표 이윤경 씨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내추럴 와인을 맛봤고, 그 맛에 반해 내추럴 와인을 찾아 여행을 다니다 아예 바를 열었다.

 

그녀는 처음 맛봤던 내추럴 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네코스테 생산자가 만든 비앙코가 저의 첫 번째 내추럴 와인이었어요. 서울에서 마셨죠. 우아하고 향긋한 향을 생각 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시골스런 냄새가 났어요. 오렌지 와 인에 가까울 정도로 컬러도 주황빛에 가까웠고요. 자기 색이 분명하고 강하지만, 그만큼의 매력이 있었어요.” 비옥한 토양이 주는 비릿한 향기는 처음엔 코끝을 자극해 놀라울 수 있지 만, 어떤 철학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것이야 말로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란 점을 알 수 있다고. 자연과 생산 자의 노고에 감사하며 편하고, 맛있게 마시는 와인이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행위의 본질이다. “막잔에 담아 편하게 꿀꺽꿀꺽 소비할 수 있는 와인이죠.” 내추럴 와인을 아주 좋아하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김찬룡 씨는 다른 지점에서 그 술을 예찬한다. “숙취가 없어서 즐겨 마셔요. 이산화황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일반 와인에 비해 도수가 조금 낮기도 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죠.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면 또모르겠지만요.” 취재를 하며 내추럴 와인을 경험해본 에디터는 다채로움이 맘에 들었다. 산미가 약간 가미된 맛있는 화이트 와인이나 다름없는 것부터, 이전에 맛본 적 없는 조화로운 시큼함을 자랑하는 강한 개성까지. 와인이 꼭 어떤 맛이어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듯한 자유분방함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내추럴 와인이 왜 갑자기 사람들한테 사랑받게 됐을까? 대개의 트렌드가 그렇듯 멀끔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추럴 와인은 값비싼 푸아 그라 대신 제철 복숭아 한입과 더 잘 어울리는 맛과 생산 과정을 가졌다는 점. 지금 서울의 미식 문화는 감각보다 감성과 윤리에 한층 가깝게 다가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민정 기자

애주가 집안의 장녀이자, 집안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술을 배운 성인 여성. 

주류 트렌드와 이를 즐기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사진 박형인 취재협조 슬로크 서울(instagram.com/slok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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