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소멸시효 완료 금액 2000억…전문가 “상법 개정도 필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보험사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즉시연금과 관련해 소멸시효 기간이 지나버린 금액이 2000억원을 넘어섰다. 상법상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문제가 된 즉시연금 보험금 지급을 최대한 미뤄 보험금 지급 의무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보험사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1개 생명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즉시연금 중 소멸시효가 완료된 보험금은 2084억으로 나타났다. 전체(9545억원)의 21.8에 달했다.

이중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소멸시효가 지나 받을 수 없는 금액이 1007억원으로 나타났다.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다만 두 생보사는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법원 소송 결과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면 모두 지급하기로 했다. 문제는 삼성, 한화생명을 뺀 나머지 보험사의 소멸시효 완료 보험금 1077억원이다. 시간이 갈수록 소멸시효가 지나 받지 못할 보험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즉시연금은 대부분 최초 가입 시 전액을 납부 한 후 10년 이상 유지하는 장기 상품이다. 소멸시효 3년을 적용할 경우 소멸시효 완료 금액은 빠르게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분쟁조정신청을 통해 소멸시효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가입자 수도 많고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분쟁조정 신청이 저조하다. 전체 가입자 16만명 중 분쟁 신청건수는 1500여건에 불과했다.

삼성, 한화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보험사 대다수는 지급 결정을 미루고 있다. 최근 KDB생명만 추가 지급 권고를 수용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금감원에 분쟁조정 신청도 이뤄지고 있고 법률상 논쟁이 있는 만큼 지급 결정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험사가 소멸시효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덕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대법원 확정판결 받을 때까지 소멸시효 3년 기간이 대부분 지날 가능성이 높다. 보험사로서는 (소멸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라며 “소멸시효를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멸시효 완료 전에 채권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도 소멸시효와 관련해 “다른 보험사들도 (삼성, 한화생명처럼) 즉시연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지적했다.

또 즉시보험처럼 보험 상품에 대해서 소멸시효를 3년만 인정하는 것에 대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의원은 “소멸시효를 3년만 인정하는 현행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채권자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다. 우리나라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때부터라 고객에게 훨씬 불리하다”며 “우리나라 민사채권소멸시효가 10년임에도 보험은 3년을 적용한다. 독일 등 선진국에는 이런 구별이 없다. 소멸시효도 우리보다 긴 5~10년이다. 우리나라 상법이 고객보다 회사에 유리한 소멸시효를 적용하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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