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약품 리베이트 건서 일부 사례 발표…논문 작성 대리에 기러기 아빠 밑반찬 제공 등 공·사적 영역 안 가려, 리베이트 요구·공권력 교란에 폭행까지도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제약사 영업사원에 대한 의사들 갑질이 최근 이슈화되고 있다. 공적, 사적 영역을 가리지 않는 데다, 리베이트 요구는 물론 이제는 공권력을 교란하고 폭행까지 일삼는 의사들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0일 경기남부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3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전국 384개 병·의원 의사에게 42억8000만원 상당 리베이트를 제공한 국제약품 공동대표 남모씨(37·남​) 등 전·현직 대표이사 3명을 비롯한 임직원 10명과 이들로부터 최고 2억원까지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 106명 등 총 127명을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기남부청 지수대는 이번 리베이트 건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의사들 갑질 행태를 포함시켰다. 통상 리베이트 수사 결과는 제약사들이 자사 의약품 처방을 전제로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의약계 관행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반면 이번에는 의사들 갑질행태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발표한 것이 특징이다. 

 

경찰 동향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의사들이 경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영업사원을 회유하는 등 갑질을 지속해 경찰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의사들은 자기가 마치 대통령인줄 착각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에 이번 경기남부청 지수대가 발표한 내용과 시사저널e가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의사들 갑질행태를 유형별로 분석해봤다. 

 

▲ 교육 참석, 논문작성은 영업사원 몫

 

우선 의사들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갑질 유형이다. 공적 업무와 사적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의사 업무와 관련되는 내용이다.  

 

매년 의료인이 필수적으로 8시간 이상 이수해야 하는 보수교육에 제약사 영업사원을 대리 참석시킨 사례가 이번에 발표됐다. 참고로 보수교육은 직업윤리, 의료 관계 법령 준수, 업무 전문성 향상에 관한 사항 등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각종 학회에 발표되는 의사들 논문 작성과 자료 수집, 번역 등을 영업사원에게 시키는 행위도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논문 작성의 경우 약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 관련 전공을 이수한 영업사원이 타깃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 대리운전은 기본, 기러기 아빠 밑반찬과 속옷 제공까지

그래도 이같은 유형의 공적 업무는 제약사 영업사원 능력과 자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상대적으로 낫다는 반응도 있다. 영업사원 입장에서 억울하지만 억지로라도 짬을 내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 사적 업무와 관련된 갑질에는 참을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영업사원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에는 대리 운전 등 각종 심부름과 원장 4자녀의 어린이집·유치원 등원 접수, 아이들 행사 참석 뿐 아니라 심지어 어머니에게 부탁해 기러기 아빠인 원장의 밑반찬과 속옷을 제공한 사례도 있다.  

 

의사들의 사적 영역에서 흔히 거론되는 것이 의사 픽업이다. 의약계 외부에서는 제약사 영업사원이 실제 얼마나 의사를 픽업하는 지 짐작도 안가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지난 2014년에는 모 다국적 제약사가 영업사원이 의사 픽업 내역을 일일히 보고하도록 방침을 정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앞서 지난 2010년 7월에는 한 다국적 제약사 영업사원이 골프 접대를 위해 의사를 픽업해 빗길에 운전하다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도 있었다. 사건 직후에는 사망한 영업사원과 의사가 동행한 사실만 파악됐었다. 골프장 등 구체적 행선지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건 발생 1년 후 서울행정법원이 골프장 접대라고 판결하면서 해당 사원의 억울한 죽음이 이슈화됐었다.  

 

▲ “얼마나 줄 수 있냐?”


리베이트 관련 부분은 공적·사적 업무와 분리가 가능하다. 이번 발표에서도 국제약품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들 중 일부는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의 위치에 있는 제약사에게 각종 음성적 리베이트를 직접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일부 의사는 제품 설명은 듣지도 않고 알비(리베이트의 속칭)는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허위진술 강요 등 공권력 교란도

이번 국제약품 리베이트 건에서 드러난 의사들의 공권력 교란 행위는 법률적으로 도의적으로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남부청 지수대가 검거한 127명 중 유일한 구속자인 의사 윤모씨(46·남)는 리베이트 수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업사원을 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윤모씨를 포함한 일부 의사들이 경찰의 수사 진행 중 국제약품 영업사원들에게 “돈을 받지 않은 것으로 해 달라. 이번만 눈감아주면 후사하겠다”는 등 협박과 회유을 일삼으며 허위 진술을 강요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범죄 행위를 감추려다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구치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됐다.  

 

▲ 대리수술은 공공연한 관행

제약사는 아니지만 의사들이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시키는 행위는 이제 전 국민이 알게 됐다. 지난 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의료계의 대리수술 관행을 적나라하게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한 전직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은 다 하고 있던 거다”며 “업계 관행의 비밀이 터질 때쯤이면 이미 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에 나오는 것”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 폭행에 사채보증 사례도

 

이밖에도 굳이 분류하면 사적 영역에 포함되는 의사들 갑질 행위가 제약사 영업사원에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의사들 술자리가 파할 무렵 영업사원에게 연락이 와 찾아가서 술값을 대신 내주는 행위는 그나마 낫다. 이번 경찰 발표에는 술값을 대신 내주고도 이유 없이 뺨을 맞은 영업사원과 사채보증을 세워 2000만원을 대신 갚게 한 의사 사례도 포함됐다. 

 

한 중견제약사 영업사원은 “의사들 갑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근본적으로 처방권이 의사에게 있는 제도와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제약사 영업사원은 “영업사원은 의사들 종이 아니다”며 “한 친구는 제약사 영업직을 그만둔 뒤 의사라면 혀를 내두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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