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수익률 기대감 대신 국민연금 신뢰 회복 기다려야

"위기는 정치 및 경제 지도자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했을 때 종료됐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한 강연에서 언급했던 것으로 유명한 말이다. 금융위기 속에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버냉키 전 의장의 지적은 장기간 수장 공백 속에 안팎으로 위기감이 커진 국민연금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국민연금이 안효준 신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을 선임하면서 향후 행보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기금운용을 책임질 수장의 부재 속에 운영됐던 지난 15개월 간의 아쉬움이 컸던 만큼 기대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국민연금은 안팎으로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다. 강면욱 전 본부장이 지난해 7월 사임한 이후 1년3개월 동안 기금운용본부는 수장 없는 조직이라는 불안감을 계속해서 드러냈다. 기금운용본부 본연의 책임이라 할 기금운용 수익률이 급격히 악화됐고 핵심 인력 이탈이 가속화됐다. 여기에 기금운용본부 독립성 강화 이슈와 과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다양한 문제가 산적했을 때 가장 좋은 해결법은 본연에 충실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민연금의 덕목은 수익성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7월말까지 수익률로 1.39%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7.28%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5% 수준으로 축소된 셈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수익률을 자산별로 나눠보면 국민연금만 특별히 부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올 들어 7월말까지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서 6.14% 손실을 냈다. 국내 증시 침체 속에 시장 수익률 역시 부진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보다 0.69%p 더 부진한 성적이다. 국내 주식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진한 성적표다. 

반면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에서는 국민연금만 못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원화 환산 수익률의 경우 시장수익률을 밑도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달러화 기준으로는 시장수익률을 상회해서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국내 산업내 특정 분야의 수출 호조 등으로 환율이 불리했다. 지난 7월말까지 국민연금의 달러화 기준 해외주식 수익률은 3.04%로 시장수익률 대비 0.21%p 높다. 해외 채권 역시 시장 수익률 대비 0.02%p 상회하는 성적을 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은 주요 운용 자산인 국내외 주식과 채권 가운데 국내 주식만이 시장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 기금운용 수장 뿐 아니라 국내주식, 국내대체, 해외증권, 해외대체 등 실장급 인사들의 부재 속에 낙제라고 보긴 어려운 성적이다. 더구나 시장과 맞서지 말아야 할 금융투자 업계에서 수익률이 한사람의 존재 여부로 급변하리라 기대하기는 무리다. 현재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신임 본부장 부임후 단기간 과도한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특수성을 가진 조직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함께 안정성과 공공성, 운용독립성 등을 기금운용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단기 트레이딩에 집중하는 모습은 국민연금의 원칙에 위배된다.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파급효과를 생각해야 해서다. 적어도 수익률 측면에서는 신임 기금운용본부장에게 과도한 기대보다 기다림이 필요한 이유다.

신임 기금운용본부장에게 당장 기대해야할 덕목은 따로 있다. '정치 및 경제 지도자들이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연루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사실상 정치와 경제 지도자들과 연루되면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신임 본부장 임명식에서 "삼성합병과 같은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기금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국민연금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국민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수익률과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신임 본부장에게 과도한 기대를 거두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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