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 미국산 수입차 점유율 저조·픽업트럭 수출 없어 직접적 영향 적어… 美 ‘관세폭탄’ 우려는 진행형, 타격 큰 부품사도 촉각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한국과 미국 정부가 FTA 개정협정을 타결했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는 '관세폭탄' 우려에 여전히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협정을 두고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 부문에서 한 발 물러서 양보를 한 만큼, 관세폭탄 대상에서 면제되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의 자국 산업보호 기조가 강화됨에 따라 자동차 수입 규제를 강화할 것이란 우려도 강해지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미 FTA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발표에 앞서 양국 통상 대표는 개정협정에 서명했다. 양국이 서명한 한미FTA 개정 비준동의안은 내달 국회 비준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협상을 통해 양국간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을 지웠다는 점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보고 있다. 이번 개정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독소조항으로 지적돼 온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조항을 개정하는 등 요구를 관철한 한편, ​자동차 부문에선 한 발 물러서 미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개정협정이 당장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미국 정부가 이번 협상을 통해 일부 차종에 한해 수출장벽을 연장하고 한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의 허용 판매대수를 늘렸지만 사실상 내수 시장에서 큰 영향력은 발휘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우선 이번 협상을 통해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에 따라 들여올 수 있는 차량 대수가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충족하면 한국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해 제작사별 연간 2만5000대까지 수입이 가능하지만 이번 협상이 발효될 경우 이 물량이 5만대로 확대된다. 

 

그러나 국내 수입되는 미국산 수입차의 대수가 한정적인 까닭에 실질적 효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제작사별 연간 판매량은 포드 8272대, 캐딜락 2008대 등 수준으로 연간 1만대 수준을 넘어선 적이 없어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적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미국은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산 픽업트럭의 수출장벽을 공고화했다. 이에 따라 픽업트럭의 수출관세 철폐 시기가 기존보다 20년 더 연장돼 2041년까지 현행 25%관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해외 업체의 미국 수출 차량의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을 낮춰 현지 생산을 유도하려는 정책인 셈이다. 

 

다만 현재 국내 완성차 업체 중 미국에 수출되는 픽업트럭 차종은 전무해 업계 타격은 비가시적이다. 현대·기아차는 2020년을 목표로 픽업트럭 '싼타크루즈'를 미국시장에 내놓겠다는 계획이나, 미국 현지 생산 방침을 내세워 이 같은 관세 조항을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진출을 목표했던 쌍용차의 미국 수출길은 더욱 요원해질 전망이다. 쌍용차는 국내 유일 픽업트럭 생산업체로 렉스턴 스포츠 등을 통해 내수에선 선전하고 있으나, 중국 등 해외 주요 시장에서 부진한 판매성적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미국에 단독진출해 생산설비를 구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이 한 발 물러섰음에도 국내 완성차 업체에 미칠 영향은 최소화한 모양새다.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 정부가 자동차 부문을 양보하면서 향후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 면제 조치를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그러나 여전히 트럼프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부과할 수 있는 25%의 고율 관세 적용 대상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에서 통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지우지 못 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한 자동차 253만대 중 미국 수출 물량은 전체의 33%인 84만5000대에 달한다. 이중 현대·기아차가 60만대, 한국GM이 13만1000대, 르노삼성이 12만3000대가량을 차지한다. 고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업체별 수익성과 제품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대미 수출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고율 관세가 실현될 경우 현대·​기아차는 미국 현지 생산으로 돌리거나 관세를 일면 수용해 가격 책정을 할 수 있지만, 르노삼성과 한국GM 등 외국계 모기업을 둔 업체들은 대미 수출길이 막힐 경우 큰 경영 이슈를 겪을 수 있다”며 “국내서 적자가 누적됨에 따라 GM의 철수설이 불거졌던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단순히 계량 분석에 따라 경제적 영향을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사의 경우 타격 폭이 더욱 클 전망이다. 완성차에 비해 마진이 낮은 부품의 경우 25% 고관세가 부과될 경우 사실상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 및 민관 기관은 합동으로 올 상반기부터 미국 정부에 관세폭탄 적용 대상에서 한국산 수입차는 면제해달라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왔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대상에서 한국은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한국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미국 현지에서 생산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올해 상반기 25%나 대미 흑자 폭이 줄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FTA 재협상을 통해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적용 대상으로부터 면제될 가능성을 높였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자동차 및 부품 수입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양국이 맺은 FTA 개정협상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자국 산업보호 기조가 강해짐에 따라 관세가 아닌 수출 쿼터 적용 등 방식으로 자동차 및 부품 수입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FTA 협상과 관세폭탄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면서 “FTA협정에서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 부문에 양보를 했지만 예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NAFTA협상에서도 자국 산업 보호 조치를 공고화했다. 보호 무역기조가 강해짐에 따라 통상 불확실성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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