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제 심화 국면 부담에 당장 경협 실익도 없어…비핵화 위한 ‘들러리’ 수행 지적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 이후 11년 만에, 지난 4월 금단의 선(線)을 넘은 지 5개월여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세 번째로 18일 평양 땅을 밟았다.

사흘 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여러 기업인들이 따라나서면서 표면적으로는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사뭇 다르다.
 

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에서야 각 기업별 참석자가 윤곽을 드러냈다. 일각에선 재판 중인 총수가 포함된 것을 놓고 적지 않은 잡음이 일고 있지만,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방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인 선정에 고심을 거듭한 부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수입차 관세폭탄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을 제외하곤 4대 그룹 총수들이 모두 동행길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에서는 김용환 부회장이 대신해 길을 나섰고 최근 남북경협에 공을 들이고 있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도 함께했다.

미국의 대북제재 국면이 강력히 적용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기업 총수의 동행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청와대는 북측과의 실효성 있는 논의를 위해 대기업들의 동행 필요성을 내세웠다. 당장은 아니지만 실제 투자 결정권이 있어야 북측을 설득하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전문경영인(CEO)보다 총수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 것도 같은 배경이다.

사실 재계 총수들이 평양으로 집결하지만 당장 북한 지역에 투자를 하거나 물자·설비 반입의 결정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결국 청와대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제인 ‘비핵화​를 위해서 총수나 오너 일가 등 결정권을 가진 인사를 반강제(?)로 참여시킨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북제재 국면 심화와 대북사업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남북경협으로 인한 당장의 실익을 얻기 위해 북한을 찾는 기업인은 없을 것”이라면서 ​향후 경협이 이뤄지게 되면 어떤 사업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감(感)을 잡는 게 이번 방북의 주된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 현대차, SK, LG그룹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700조원에 달한다. 한국은행 추정 북한의 지난해 GDP(국내총생산)는 30조원 수준에 그친다. 현재의 시장 가치로만 봐선 북한은 사실 우리 기업들에게 의미가 없을 정도다.


물론 향후 대북제재가 풀려 경협에 속도가 나면 사업진출 우선권을 얻는 데 유리하거나, 남북화해 무드 조성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개발이 미흡한 북한 시장의 미래 잠재가치를 생각하면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좋다는 판단도 기저에 깔렸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 기조를 감안하면 기업인들이 선뜻 따라나설 만큼, 썩 구미가 당기는 미끼는 아니었을 것이다.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들러리 수행​이라는 지적을 가볍게 넘기기 힘든 이유다. 

 

부디 여러 가지 부담을 무릅쓰고 이번 방북길에 오른 기업인들이 각자 기대한(?)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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