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경쟁 유발 VS 시대에 따라 변해야
“미국에서 구글, 페이스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터넷 개방성이 있다. 망중립성이 사라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5세대(5G) 네트워크 서비스를 앞두고 망 중립성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특히 미국이 망 중립성을 폐지하면서 국내 통신시장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가운데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G 시대의 망 중립성 어디로 가고있는가’ 세미나에서 에르네스토 팔콘 미국 변호사는 기조발제를 맡아 “망중립성이 사라지면 더 많은 돈을 내는 기업이 더 빨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선권을 갖게 된다”며 스타트업의 혁신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망 중립성은 모든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전송되는 데이터 내용, 유형, 제공자 등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인터넷 망을 공공재 성격으로 보고 투명하고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 원칙인 셈이다. 팔콘 변호사는 망 중립성 폐지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세미나를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팔콘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구글, 페이스북 등 맨땅에서 출발해서 성공한 스타트업이 많은데 이런 기업들이 클 수 있었던 이유는 인터넷의 개방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중립성이 사라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바다 건너에서 살고 있는 내가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의 개방성 때문이다. 인터넷의 긍정적인 가치를 보여준 좋은 예시”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 6월 망 중립성 원칙을 폐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망 중립성 폐지를 주장해왔고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의결했고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6월 11일(현지시간)부터 망 중립성 원칙이 사실상 사라졌다.
이번 결정으로 버라이즌 등 미국 통신사업자는 유튜브 서비스로 많은 데이터를 소모하는 구글 등에 추가로 망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접속 속도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망중립성 폐지는 현재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다. 망 중립성 폐지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도 벌어졌다. 1000개 이상의 소기업들이 망 중립성 철회를 반대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미국 국민 85%가 이번 폐지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역시 우려를 드러냈다. 최 대표는 “망 중립성 완화는 곧 훼손이고 통신사의 망 지배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통신사의 망 지배력이 강했던 시기를 되돌아보면 통신사가 게이트 키핑을 하고 갑질을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최 대표는 망 중립성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망 공공성으로 더 나아가야한다고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네트워크 접속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산업에서도 스타트업이 저렴한 망 비용으로 쉽게 창업하고 혁신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망 중립성을 완화하면 기업의 안정적인 혁신이 불가능해진다”며 “대용량 트래픽 발생과 대규모 인터넷 기업의 등장으로 완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많은데 돈을 많이 버는 대규모 이용자가 나타났을 뿐 모든 것이 이용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트래픽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반면 통신 업계는 팽팽히 맞섰다. 류용 통신사업자연합회 팀장은 “통신사가 최전방에서 최고의 네트워크 망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실질적으로 얻은 이득이 없다. 무선 매출은 2004년 이후 계속 줄고 있는 추세”라며 “망 투자만 늘고 있는 상황에서 망 중립성을 완화해 투자유인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통신사가 내는 기금 등을 활용해 다른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등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망 중립성 완화로 우려되는 통신사의 시장지배력 남용 등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 등 다른 법안으로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며 “망 중립성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진화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한편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6일 ‘한국적 망 중립성 정책 필요성에 대한 소고’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망 중립성이 완화되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안 의원은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들은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들은 망 사용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며 “해외 기류에 휩쓸려 국내 망 중립성 완화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