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마셔야 돼?
에디터는 술을 마시는 게 좋다. 아마도 선택권을 쥐게 되기 때문일 거다. 많이와 조금, 단것과 쓴 것, 당신 말고 저 사람 같은 걸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아직 20대 후반인 직장인에게는 일상에서 그 모든 판을 짤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에디터에게 술은 휴식 같은 의미다. 이모부처럼 어떤 이유가 있다면 쉬는 날 굳이 술을 마셔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휴식은 일상에서 느꼈던 권태와 잠시 작별하고 나를 환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일상 에 끼어 있던 것을 굳이 휴식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필요는 없다. 내 선택으로 무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현대인이 취하는 휴식의 근본 안으로 파고드는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무얼 하느냐 마느냐가 나무젓가락을 두 동강 내듯 똑 부러지 기만 하는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할까, 말까’의 중간 지점에서 고민한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때 선택을 유보하는 것도 휴식의 일부니까,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역시 자유다. 휴식을 표방하는 술 제품들이,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단계에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딱 한 잔’보다 약간 더 적게, 혹은 ‘아주 조금 더’의 양에 딱 맞춰 팩에 든 피노 그라지오, 플라스틱 잔에 밀봉된 블랑 같은 것들은 아주 달콤하다. 우악스럽지 않은 도수를 가진 편안한 디자인의 맥주와 250ml짜리 우유 팩보다 더 작은 맥주도 계속 찾게된다. 자유, 휴식이 주는 정도의 미끈함인 것 같다.
그러니까, 쉴 때 굳이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결정을 유보해도 그만,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그래도 에디터는 굳이 마실 것 같다. 팩이나 플라스틱 잔에 든 와인 이든, 우유 팩만 한 맥주든 그걸 다 맛보는 선택을 하는 것도 휴식의 일부니까. 휴가의 계절이니까. 잘 쉬어야지.
◎박민정 기자
애주가 집안의 장녀이자, 집안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술을 배운 성인 여성. 주류 트렌드와 이를 즐기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사진 정택
취재협조 CSR 와인(www.thevincsr.com),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www.koreacraftbrewery.com),
원글라스와인 코리아(oneglas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