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개정안에 담긴 ‘의사 처벌강화’… 여성계 “이해단체만 있고 여성 주체권 빠져”

인공중절수술인 낙태가 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보건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시행한 의료인에 대한 처벌 강화 정책을 내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낙태 수술 거부를 밝히면서다. 헌법재판소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여성단체들은 낙태죄 처벌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의료관계 행정처분 개정안을 공포했다. 잡음이 불거진 부분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개정이었다. 복지부는 형법을 위반해 낙태 수술을 한 의사는 자격 정지 1개월에 처한다고 밝혔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불법 낙태 시술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반발했다. 모자보건법상 허용된 낙태 수술만 진행한다고 내놓은 것이다. 의사회는 낙태죄 처벌에 대한 형법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데 여성과 의사만 범죄자로 모는 법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거센 반발에 복지부는 즉시 처벌을 유예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헌법재판소가 판단이 나올 때까지 처벌 내용이 담긴 시행조치를 미루겠다고 복지부 측은 밝혔다. 현재 낙태죄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6기 헌법재판관 5명은 낙태죄 위헌소송을 이어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의사회는 물러서지 않고 헌재 판결 후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산부인과 의사들이 어떻게 진료행위를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요구했다. 아울러 의사들에게 구체적 대처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일시적인 방편으로 처벌을 유예한다면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낙태수술 중단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는) 한시적인 유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시킴으로써 여성과 의사들을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는 불명예를 용납할 수 없다생존이 불가능한 무뇌아조차 수술을 못하게 만든 45년 전의 모자보건법을 현실에 맞게 사회적 합의로 새로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의사회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판결 전까지 처벌 강화 등은 미뤄진다산부인과의사회와 면담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강간 피해자 입증해야 낙태 가능?여성단체 “시대착오적인 법

 

낙태죄에 대한 찬반 논란은 수 년 간 이어져왔다. 종교계와 학계에서는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폐지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이들은 낙태죄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모자보건법이 타당하며, 낙태가 허용될 경우 자칫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여성계는 낙태죄에 대해 태아를 품은 모체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생명을 더 중시하는 시대착오적인 법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여성단체는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결정권이 무시된 현행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강간 혹은 준강간, 근친상간, 유전학적 질환 등 예외 경우를 제외한 낙태 행위는 금지돼 있다. 그러나 강간에 의한 임신임에도 여성은 가해자를 고소한 뒤 피해자를 입증받아야 합법적 낙태를 할 수 있다. 가해자가 강간죄를 부인하면 소송은 길어지고 여성은 낙태가 가능한 시기를 넘길 수도 있다. 현행법상 낙태가 가능한 기간은 임신 24주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모자보건법 탓에 낙태가 불가피한 여성들은 불법 시술소로 향하고 있다태아의 생명을 가볍게 보는 것도 아니고, 낙태를 많이 하자는 것도 아니다. 선택과 결정을 여성이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낙태 합법화 시위에 참석한 한 20대 여성 A씨는 낙태죄 개정에 대해 찬성하며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만 법은 의사와 여자만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다. 남성은 빠져 있다. 불공평한 법인 동시에 여성의 결정권을 무시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글은 23만명이 넘게 청원했다. 청와대는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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