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평론가 이용재가 이번엔 말 많은 평양냉면 신에 가볍고 예쁜 책 하나를 던졌다.

<냉면의 품격>은 방대한 범주의 한식 중평양냉면을 콕 집어 비평한다. 어쩌다 한식 중 평양냉면을 가장 먼저 ‘비평적인 좌표’에 올리게 되었나?

외국 생활 당시 취미로 요리를 독학하던 과정에서 이 음식이 집에서 재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대부분의 한식은 집밥과 외식의 구분이 모호하고, 되려 ‘집밥 같다’는 표현으로 외식을 칭찬하는 현실에서 비평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실향민의 음식이라는 정서적인 정통성이 작용하는점 또한 흥미로웠다. 모든 음식이 나름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야기가 많은 음식이다.

 

이전의 저서들에 비하면 꽤나 책이 얇다. 평양냉면에 관한 철학은 최대한 덜어내려한 것처럼 보인다. 의도적인 연출인가?

맞다.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두려운 게 동어 반복이다. 평양냉면의 비평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전작인 <한식의 품격>에서 비중 있게 다루었으므로 이 책에는 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책을 통해 처음 내 비평적 시각을 접할 독자를 위해 머리말에서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언급했다. 어떤 매체에서는 평양냉면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그 역시 의도였다.

나는 건축 역사 및 비평으로 진로를 택한 연구자였기에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음식 저널리즘은 역사나 어원 등, 소위 인문학적 자료를 사골 우리듯 우려 써먹기만 할 뿐, 그 속에서 패턴이나 교훈을 도출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분량도 계획적이었다. ‘평양냉면 기행을 위한 핸드북’이 애초에 기획 의도였다.

 

<한식의 품격>을 쓰던 당시에는 한식이 지닌 맛의 원리와 개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기본 전제를 계속 깔아야 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평양냉면은 상황이 다르다. 한식 중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지향점과 문제점 혹은 대안에 관해 말하기 좋아하는 음식이 됐는데.

모르겠다. 지향점은 존재하지만 많은 부분 감정적인 가치에 기댄 개인의 호불호다. 아니면 스테인리스 주발에 담겨 나오는 냉면을 ‘스텐 젓가락으로 먹으면 안 된다’ 같은 일종의 컬트가 발달했다. 또 하나 문제는 매년 매체에 등장하는 ‘냉면값 오른다, 서민 음식이라 하기 어렵다’로 대변되는 ‘가격 대성능비’에 관한 논란이다. 지난 6~7년간 꾸준히 평양냉면에 대한 글을 쓰면서 대체로 이런 시각이 너무 단순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올해 책을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스테인리스 주발과 공동 수저통을 쓰는 환경에서 내는 냉면이 1만2천원까지 올랐다면 이제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어진 거다.

 

<냉면의 품격>에서 격식을 갖춘 냉면집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동의하는가?

부분적으로만 동의한다. 일부 기획형 음식점 혹은 고깃집은 놋그릇에 담아 내놓아도 딱히 맛있지 않다. 하지만 소위 ‘노포’는 그런 차이가 분명히 완성도와 맛에 영향을 미친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다. 그릇이 좋고 접객이 좋아서 냉면이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측면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음식에도 더세심하게 접근하고 그래서 더 나은 음식을 내는 것이다. 한편 한국의 음식 문화는 ‘서민’의 굴레에 지나치게 얽매어 있다.

‘허름하지만 맛만 있으면 되지’라는 비틀린 믿음이 있는데 과연 그런 게 가능한 현실인지 언제나 되묻고 싶다.

 

모든 비평가는 비평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당신이 비평을 쓰는 과정에서 완성도를 위해 마련하는 체계 혹은 가이드라인은 무엇인가?

평가의 여건 구축에는 나름 기준이 있다. ‘내 돈 주고 먹기’는 이제 말하기도 지겹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 모든 음식은 끼니의 맥락에서 먹는다. 파인 다이닝처럼 식사 시간이 길고 오감에 호소해 피로감이 강한 음식이라면 취재를 하더라도 연일, 혹은 연달아 끼니로 먹지 않는다. 대체로 평가를 위해서는 음식만 놓고 조리나 맛내기 과정 등을 역추적해야 되는데 언제나 위험부담이 크다.​ 먹어본 음식이라면 그 기본적인 인상을 시각적으로 기억한다. 맛의 특징과 환경 등등이 일종의 다이어그램이나 도표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비평문을 쓸 수 없다. 그 위에 디테일을 얹는 작업이 가장 까다롭다.

 

이 책이 달성하고자 한 목표, ‘음식 비평서’로서의 조건은 무엇이었나?

간단히 답할 수 있다. 일단 비평서 자체가 없으니까. 책의 존재 자체를 놓고 가장 고민했다. 과연 이런 책을 내도 되는 것일

까? 그 단계를 넘어서면 나머지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 내 돈 내고 먹고, 먹은 대로 평가한다. 평가한 대로 쓴다.

그저 이런 책을 내는 것 자체가 한국의 현실에서는 충족시켜야 할 목표이다.

 

음식 평론가의 ‘취향’과 ‘완성도에 대한 잣대’는 얼마나 분리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냉면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의 취향으로 평가했다면 의정부 계열은 고춧가루를 뿌린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나의 취향이 없지 않겠지만 아직 제대로 꺼내놓아본 적이 없다.

 

평양냉면 외에 비평적 잠재성을 지닌 한식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공교롭게도 역시 면 음식인데 짜장면이다. 서민의 굴레를 쓰고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또한 조금씩 사라지는 음식이라고 본다.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지만 완벽하게 한국화되었다는 점도 흥미롭고, 소위 전통적인 한식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하는 

지방이 바탕을 깔아준다는 점에서도 비평적인 잠재성을 높게 친다.

 

​◎ READ IT OUT

영화감독 변영주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향유하고 있는 대중적인 대상을 비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냉면의 품격>은 음식 평론가 이용재의 또 다른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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