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상장예정기업 감리…투자자 안전판 기대

국내 기업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삼성그룹에 속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지금도 통용되는 분류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자 생활 초년생이던 시절 자주 듣던 말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실적발표에서 국내 최고 기록을 다시 쓰고 있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을 앞두고 다른 기업은 삼성전자가 어떻게 적용했는지 공개하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또 다른 의미로도 삼성은 국내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변경과 분식회계 의혹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이후 상장 준비 기업들에 대한 감리가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상장 기업에 대한 감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감리 과정에서 수정 사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지 않아서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이후 분식회계와 자칫하면 상장폐지까지 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전 연결회사로 인식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기업으로 변경하며 지분가치를 재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평가 이익을 계상해 적자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흑자로 돌아섰다는 의혹을 받는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2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일부 사안(콜옵션 공시누락)에서는 고의성을 인정했지만 분식회계와 관련한 논란은 판단을 유보하고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청한 상황이다. 

핵심 사안에 대해서 금융당국의 판단이 유보되면서 상장을 준비중인 다른 기업들의 감리도 길어지고 있다. 관계기업으로 회계처리를 변경하면서 분식회계인지 아닌지 확답을 줬다면 다른 기업들도 일정한 기준이 생겼겠지만 현실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형식보다 실질을 우선하는 IFRS의 특성상 주변 상황을 모두 감안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대오일뱅크 역시 비슷한 이슈에 감리가 길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오일뱅크는 합작투자를 통해 지분을 보유중인 현대쉘베이스오일을 지난 상반기말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변경했다. 

현대오일뱅크가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쉘베이스 오일을 종속기업으로 둘 경우 현대오일뱅크의 연결 재무제표에서는 현대쉘오일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모두 가져올 수 있다. 반면 관계기업으로 분류할 경우 매출액은 그대로 둔 채 현대쉘오일의 수익을 보유 지분인 60% 만큼만 지분법 이익으로 가져오게 된다. 

현대오일뱅크 회계처리 변경은 영업이익은 줄지만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높아진다. 아직 증권신고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변경이 상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회계기준으로는 관계기업에 대한 회계처리 변경을 두고 획일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상장 예정 기업의 회계처리를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찌보면 과거에도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는 절차다. 감리가 길어진 만큼 상장기업 투자자의 안전판도 두꺼워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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