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장애‧보안사고에 “자금 없이도 보안시스템 갖췄나” 의혹…전문가 “자본금 요건 있어야”

경영상태가 부실한 기업이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에 나선 가운데 거래소 관련 규제가 미비하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사고와 시스템 장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커진다. “내 돈은 과연 안전할 것인가, 제 때 투자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우려다. 특히 가상화폐 거래소는 여전히 영세 기업들이 많아 투자자 보호 시스템 문제가 아직도 불안하다. 

 

일부에 한정되긴 하지만 가상화폐 사고를 대하는 태도도 안일하다. 해킹 사고가 터져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면 아예 문을 닫고 다른 사이트를 개설해 똑같은 서비스를 이어가기도 한다. 거래소의 잦은 사고와 책임 회피성 대응은 업계 전반의 신뢰도 하락으로도 이어진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런 상황 속에 최근 한 적자기업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열었다. 이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서버 증설도 제 때 못하는 회사가 보안에 투자할 돈이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 거래소는 늘어나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 시스템 장애를 연달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거래소는 정부 관리 감독 대상도 아니어서 이용자 보호 사각지대로 남아있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자본금 기준 등 최소한의 요건도 마련돼 있지 않아 신고만 하면 누구든 영업이 가능하다. 투자자들은 업체별 보호 장치에 기대야 한다. ​적절한 자본과 시스템을 갖춘 거래소만 투자자 자금을 다룰 수 있도록 정부의 시급한 감독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적자 기업, 거래소 보안 체계 갖췄을까…거래장애‧보안사고에 투자자 ‘불안’

NICE 기업평가정보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기업평가등급 ‘C+’를 받은 한 업체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열었다. C+는 상거래를 위한 신용능력이 최하위 수준이며, 거래위험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기업에 부여되는 등급이다. 

 

이 거래소는 다른 거래소들과 큰 시세 차이를 보여 차익을 얻기에 유리하다. 이 때문에 최근 거래자들이 급증했다. 


이 업체는 현금흐름 부문에서도 3년 연속 ‘CF6’ 등급을 받았다. CF6은 현금흐름이 2년 연속 적자로, 수익성이 매우 열악한 상태를 의미한다. 당기순이익 및 영업활동조달현금 모두 적자였으며, 지난해에는 적자 정도가 최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해당 업체는 지속적으로 자금난을 겪었지만 얼마 전 가상화폐 거래소를 열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은행이나 증권사와 달리 자본금 기준이 없어 최소한의 자금만으로 거래소를 열 수 있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기자본금 기준은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자율규제안에만 20억원으로 명시돼 있다. 이 기준 역시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해당 업체의 거래소가 최근 보안 사고, 거래장애 등을 잇따라 겪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는 거래량 및 이용자 수가 증가하면서 더 부각됐다. 이에 해당 거래소가 보안 시스템 및 거래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췄는지 불분명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안 장치 등을 갖추려면 수 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설립 자금이 부족할 경우 완전한 시스템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각 거래소에 금융기업에 준하는 보안시스템을 갖출 것을 요구하며 최소 자기자본금 기준으로 20억원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거래소는 강력 보안체계를 구축했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의 불안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해당 거래소를 이용한 적 있다는 김아무개씨는 “지금까지 적자만 내던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보안 공격에 의해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거래소 운영요건 ‘전무’…전문가 “자본금 등 요건 갖춰 등록제 시행해야”

이에 따라 설립 시 최소 자본금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을 정도로 거래소 관련 규제가 미비하다는 사실이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여야 의원들이 거래소 인가제 등의 내용이 포함된 가상화폐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소관 위원회 심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상태다.

그 사이 해외에선 거래소 운영에 관한 제도들이 속속 등장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의 등록 심사와 함께 거래소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등록심사를 통과하려면 일정 자본금 요건과 사이버 보안 및 자금세탁방지체계 등을 갖춰야 한다. 미국도 일정 자격요건을 붙여 거래소 등록제를 시행 중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는 “자금 상태가 좋지 않은 영세 기업이 거래소를 운영하면 이는 곧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 때문에 일본은 요건을 갖춰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최소 자본금 등 적절한 요건을 갖춘 기업에 한해 등록제를 시행하는 게 옳다.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부터 하루 빨리 정의해 거래소 요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회에 가입된 12개 거래소들은 자율적으로 최소 자본금 및 시스템 안정성 요건을 규정한 뒤 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거래량 기준으로 국내 10위 내에 드는 거래소들 중 자율규제를 따르지 않는 거래소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역시 거래소 관련 규제 정비가 필요한 이유로 지적된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통제 받지 않는 시장에서는 정보비대칭성을 이용한 불법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들은 거래소로부터 피해를 받기 쉽다”며 “현재 한국에서는 거래소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거래소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