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약관이라도 해석은 소비자에 유리해야

생보업계의 즉시연금 사태를 보면 2년 전 일어난 자살보험금 논란이 떠오른다. 당시 자살보험금 논란은 법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첨예하게 갈렸다. 일단 대법원에선 보험사가 지급해야할 미지급 자살보험금에 대해 소멸시효가 지났으면 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결국 보험사 입장에선 이 보험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것과 약관이 소비자와의 약속이라는 명분 때문이다. 자살보험금은 금감원의 힘과 논리로 보험사가 지급 결정을 내리며 일단락됐다. 이와 비슷해 보이는 즉시연금 논란은 어떻게 끝날까.

 진실은 단순하고 거짓은 복잡하다’라는 말이 있다.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는 이 명제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태가 법적 분쟁으로 흘러가면서 본질이 흐려지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생명이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한 상속만기형 즉시연금 민원인이 금융감독원에 넣었던 민원을 취하하면서 즉시연금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기 어렵게 됐다.

물론 금감원은 민원 취하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른 민원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피해는 명확하다고 본다. 민원인에 대한 소송 지원 방침도 그대로고 보험사의 즉시연금 일괄구제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도 변함없다.

보험사에서 주장하는 것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서 문제가 된 책임준비금을 마련하지 않고 보험 상품을 유지, 판매할 수 있냐에 있다. 이런 기본을 무시한 채 즉시연금을 문제 삼고 있는 금감원이 보험의 기본을 알고 있는건지 의심스럽다는 것이 보험사 주장이다. 특히 이번 사태의 핵심이 불명확한 약관에서 비롯됐다면 금감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당국에 반기를 들고 있다. 금감원이 이런 약관을 승인해 놓고 대규모 민원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모든 책임을 보험사에 돌리고 있다는 반발이다.


이런 이유로 삼성생명은 전체 가입자 5만5000명 중 실제 지급된 연금액이 최저보증이율로 예시한 연금액보다 적게 나온 2만2700건의 71억원을 돌려주기로 했다.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이 삼성생명에 일괄구제하라고 한 미지급금은 4000억원이 넘는다. 한화생명도 마찬가지다. 한화생명은 즉시연금 일괄구제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며 약관에 대한 법리적이고 추가적인 해석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판단 후에 차후 이 상품의 계약자들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두 생보사 모두 이렇게 법적 논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 복잡하고 첨예한 주장들 뒤에 조용히 있는 건 자살보험금 때와 마찬가지로 보험사의 약속(약관)대로 보험금을 받지 못한 ‘고객’과 보험사와 고객 사이의 깨져버린 ‘신뢰’다. 

 

보험사 약관의 뜻이 모호할 경우는 종종 있다. 전문용어와 어려운 문장이 모호성을 키운다. 하지만 보험사는 약관이 문제가 됐을 경우 ‘가입할 때 제대로 읽고 가입해야지’라고 말하면 안된다. 우리나라 법률은 “약관의 뜻이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라고 말한다.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수 있는 고객은 극히 드물다. 연금보험의 기본 원리도 모를 수 있고 저금리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예측하기도 힘들다.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고객은 언제나 약자다. 그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금감원 입장이고 우리 사회가 용인한 법률의 논거다.

보험사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금감원이 말하는 바가 더 명료하고 정확하다. 사회 정의와도 일치한다. 소비자가 갑이라는 말이 아니다. 소비자가 약자라는 명분이다. 약관을 신뢰한 고객이 약관으로 피해를 입고도 구제받지 못한다면 보험업계의 신뢰는 쉽게 무너진다. 자살보험금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점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보험 계약자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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