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논의하는 동안 인터넷은행 위기도 심해져…완화 합의 서둘러야

점증모형은 대표적인 정책결정 이론 중 하나다. 정책결정과정은 기존 정책의 결함을 보완하면서 점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책을 평가하고, 잘못된 점을 피드백하고, 다시 논의를 거쳐 이를 보완해나가는 식이다. 예산편성을 비롯한 다수의 우리나라 정책이 이 점증모형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언뜻 보면 정부 의사결정 방식의 정석처럼 보이지만, 점증모형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환경이 급변하고, 혁신이 필요할 때가 그 경우다. 점증적인 피드백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회 환경이 또 다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점증모형이 통하지 않는 시기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며, 신기술에 도전하는 사람도 날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와 국회가 기존 규제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완화 여부를 고민하는 동안,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기술 스타트업이 사라지고 있다.

차량 공유가 그 예다. 우버가 한국 진출을 시도했던 2014년부터 차량공유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부가 택시 업계 반발 등을 고려하면서 논의가 4년째 이어졌다. 그 사이 유명 벤처캐피탈들의 투자를 받으며 당당히 나섰던 차량공유 앱 ‘풀러스’는 직원 70%를 구조조정해야 했다. 반면 지구 반대편에선 우버가 세계 1위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도마 위에 오른 은산분리 완화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에서 은산분리 관련 논의가 진행된 최근 몇 주 사이 케이뱅크는 대출상품 하나를 더 중단했다. ‘직장인K 신용대출’, ‘직장인K 마이너스통장’ 상품에 이어 일반가계신용대출까지 중단된 것이다. 원인은 지속된 자금난이었다. 케이뱅크는 유상증자로 자본을 확충하기 전까지 대출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 상황에서 케이뱅크 유상증자의 길을 터줄 유일한 방법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규제 완화를 주문했지만 국회는 아직 우왕좌왕이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이 3개나 발의됐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하나가 더 추가되기까지 했다. ‘점증적 논의’ 과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당명이 새누리당이던 2016년부터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적극 주장했고,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당시 야당 의원들도 특례법안을 발의하며 논의를 이어 갔다. 논의가 어영부영 이어진 2년여 동안 우리나라엔 2개의 인터넷은행이 생겼으며 이들의 증자난과 적자사태까지 발생했다. 여야가 30일 법안 처리를 예고하면서 규제 완화에 불이 붙긴 했지만, ICT 기업 기준 등 예외조항을 놓고 마찰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부작용을 막기 위한 논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히는 ‘재벌의 은행 사금고화’는 당연히 일어나선 안 된다. 다만 2016년에 발의된 특례법안이 유력하게 꼽힐 정도로 논의가 많이 진행된 분야이니, 이제는 완화 의지를 제대로 갖고 합의에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흔히 인터넷은행은 핀테크의 중심으로 꼽힌다. ‘테크(tech)’가 들어가는 단어 치고 빠르게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관련 기술은 끝없이 변해갈텐데, 국내 인터넷은행들만 자본 부족으로 기술 발전을 놓치게 돼선 안 된다. 이제는 점증모형을 내려놔야 할 때다. 느림이 아닌 ‘서두름’에서도 미학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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