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펴낸 류승연 작가를 만나다

그녀의 열 살 아들은 발달장애인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10년간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로 살아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다. 장애인을 ‘도와달라’, ‘잘해줘라’는 게 아니다. 그저 길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아, 저 사람은 장애가 있구나’ 하고 담담한 시선을 보내달라는 거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은 작가 류승연의 첫 번째 책이 다. 지난 201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한 인터넷 매체에 ‘동네 바보형’이 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 때가 되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그녀 역시 여느 부모와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열 살 된 쌍둥이 자녀 중 한 아이, 아들 동환이가 발달장 애인이라는 거다. 책에는 그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했는지 아주 자세히 기록돼 있다.


동환이의 장애는 승연 씨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놓았다. 강남 8학군 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정치부 기자로 제법 경력도 쌓으며 거칠 것없었던 그녀의 인생에 아이의 장애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암흑 같았다.


“솔직히 ‘아들이 내 인생을 망쳤어’란 생각을 5~6년은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의 균형감이라는 게 기가 막혀서 잃는 게 있으면 얻어 지는 것도 있더라고요. 잃은 건 기자로서의 커리어, 오만함, 경제력, 인생 계획 같은 거고, 얻은 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에요.”


승연 씨에게 행복은 우아하게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뭐 그런 종류는 아니다.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가 친구 돕겠다고 친구의 신발주머니를 대신 들고 교실 문을 나왔을 때, 배가 고프면 ‘뭘 달라’는 말은 못하고 냉장고에 머리만 쿵쿵 찧던 아이가 부엌에서 햇반과 스팸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왔을 때…. 다른 이들에게는 별거 아닌 이런 일상 하나하나가 그녀에게는 남편과 친구에게 전화해 소란스럽게 알리고 싶은 너무도 큰 행복이다.


‘동네 바보형’을 연재하게 된 시기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일부 학부모가 동환이를 퇴학시키려고 교육부에 진정을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눈치가 보여 누군가에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를 ‘미안합니다’란 사과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그 소식을 듣고 보니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을 대하는 매뉴얼을 한번 제대로 알려주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동네 바보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상당히 세다. 아이의 장애를 이렇게까지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승연 씨는 오히려 그덕에 사람들에게 확 와 닿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왜 동네에 바보 하나씩들 있잖아’란 말은 사실 관용 어구죠. 그 동네 바보들은 분명 우리 아이처럼 발달장애 혹은 다른 장애를 지녔을 거예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보 콘셉트도 비슷할 테고요. ‘동네 바보형’이라는 단어를 쓴 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 말 하나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우리는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며, 장애 역시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길에서,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마주쳤을 때 ‘얼음’이 됐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터. ‘장애인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 보다니 내가 못된 건가?’라는 자책도 해보았음 직하다. 하지만 승연 씨는 그건 ‘장애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장애인 바이러스’ 취급하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받은 상처를 굳이 헤집어 글로 풀어낸 것도 ‘사실 장애아를 키운다는 게 이런 겁니다. 그러니 길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면 이렇게 대하세요’라는 메시지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 사회에서 장애가좀 덜 특별해지는 것, 장애인 부모가 죄인으로 살지 않는 것, 비장애인 아이들이 누리는 교육 기회를 동등하게 갖는 것…. 작지만 아주 큰그녀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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