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 갑질 이슈 자회사에 확대 적용한 국토부 행태 ‘도마’…단발성 처벌 아닌 행정 내실 키워야

“면허를 취소하지 않더라도 갑질 물의를 일으킨 진에어에 대해서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지난 17일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진에어의 면허유지 결정을 발표하며 이 같이 설명했다. 언뜻 넘어가기 쉽지만 한 대목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갑질 물의를 일으킨 진에어라는 구절은 갑질의 행위 주체를 진에어로 잡았다. 그대로 읽게 되면 진에어 자체 경영진이 갑질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진에어는 갑질을 하지 않았다. 진에어 직원들은 더더욱 그렇다. 협력사 직원에 대한 폭언, 폭행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것은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와 한진그룹 총수 일가다. 이로 인해 면허 취소 위기에 놓여 4개월간 고용불안을 겪은 진에어 직원들은 오히려 ​갑질의 피해자에 가깝다. 진에어 직원들이 국토부의 영업 제재 방침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는 이유다. 

 

국토부는 진에어의 면허를 유지하는 대신, ‘특단의 조치’로 영업 상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국토부 결정에 따라 진에어는 경영 문화가 개선되기까지 당분간 신규 노선 허가 제한, 신규 항공기 등록 및 부정기편 운항허가 제한 등 제재를 받게 된다. 

 

​현재 26대 기단을 보유한 진에어는 올해말까지 4대를 추가 도입하려 했으나 이 계획마저 차질을 겪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달에도 진에어는 B737-800 1대를 국토부에 등록하려다가 인가받지 못했다. 업계선 저비용항공사(LCC)들의 공격적인 기단 도입 경쟁에서 진에어가 다소 밀릴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이 같은 ‘제재’가 사실상 처벌을 넘어 심판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는 정황은 다소 뚜렷하게 드러난다. 국토부는“갑질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 영업 제재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경제적 처벌의 칼날이 오너 일가가 아닌 진에어 직원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겨눠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국토부가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일으킨 갑질 이슈를 자회사인 진에어에 확대 적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진에어는 외국인 조현민 전 전무가 등기이사로 6년간 재직한 사실로 인해 면허 취소를 검토 받을 뿐, 한진그룹의 갑질 이슈에 대한 심판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이 같은 결정은 회사가 그룹 총수의 소유물이라고 보고 있는 국토부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진에어 직원들은 이 제재를 “국토부의 또 다른 갑질​이라고 보고 있다. 박상모 진에어 노조위원장은 “스스로의 관리 감독 부실 책임은 숨긴 채, 총수일가의 잘못을 애꿎은 직원들에게 물으려 한 국토부의 어처구니 없는 처사”라고 힐난했다. 

 

국토부가 제재를 가하는 근거도 다소 불분명하다. 신규 항공기와 노선 허가에 제재를 부과하는 조치는 일반적으로 항공사가 항공법을 위반했거나 승객 안전을 위협했을 때 발효된다. 국토부는 현행법상 면허취소 외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등 처벌이 불가능해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위법 사항에 대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 동정을 따랐다는 분석에 힘이 쏠린다. 국토부가 경영 정상화가 이뤄질 때까지 ‘당분간 영업 제재를 가한다는 조건도 자의적 기준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토부가 칼피아(대한항공과 마피아의 합성어) 논란과 여론 질타에서 벗어나 신뢰를 쌓기 위해선 보다 내실 있는 행정에 집중해야 할 때다. 정치 분쟁에서 벗어난 중립적 행정 기관으로 남아야 한다. 사후적 처벌에 나서기보다 선제적 대응에 나서 문제를 예방하고 봉합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항공산업에 있어선 특히 그렇다. 

 

물론 때로 정부 기관의 경제적 처벌은 기업의 부패한 경영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칼날을 어디에 겨눴는지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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