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북경협 제재 등 조건 내걸었을 가능성…일정 잡힐 때까지 난항 이어질 듯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측 수석대표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북측 수석대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남북이 고위급회담을 통해 ‘3차 남북정상회담’을 9월 중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하지 않아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날짜가 정해졌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일정을 공개하지 않아 북측이 정상회담을 놓고 대북제재 완화 등 조건을 내걸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남북은 지난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이른바 ‘속전속결’ 회담을 진행했다. 과거 반나절 가까이 이어졌던 회담과 달리 1차례의 전체회의, 1차례 수석대표 접촉, 2차례 대표 접촉 후 종결 회의까지 총 3시간35분이 소요됐다.

공동보도문 또한 합의사항 없이 짤막한 세 문장으로 끝났다. 정상회담 일정도 ‘9월 안에 평양’이라는 구체적 일정 없는 수준으로 적시됐다.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통위 위원장은 “중요한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를 진척시키는 데 있어서 쌍방 당국이 제 할 바를 옳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회담 막판 종결회의에서 정상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순탄치 않았음을 시사한다.

리 위원장은 이날 “북남 사이 미해결 문제, 북남 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책임적으로 신속히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 북남 관계를 일정대로 발전시키고 일정에 오른 문제를 실행해나가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며 “통일부 장, 차관 선생도 나왔고 청와대도 나온 만큼 이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리 위원장은 “오늘 북남 회담과 개별 접촉(수석대표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가 탄생할 수 있다”며 “일정에 오른 문제들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조명균 선생(남측 수석대표)이 돌아가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북과 남, 남과 북의 모든 일정이 진척되게 제 할 바를 다하자는 것을 특별히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리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북측이 이날 회담에서 정상회담 개최의 최종적인 조건을 내건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양측이 이날 회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 상황을 점검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북측이 대북 제재 완화 문제 등을 거론하며 정상회담 최종 일정 확정의 조건을 내걸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조평통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남북고위급회담 전날인 12일 ‘외세에 대한 맹종맹동은 판문점선언 이행의 장애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여가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이러한 지향과 요구에 비해볼 때 지금 판문점선언 이행에서 응당한 결실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선 북측이 최근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북미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의 일정과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놓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교 행보 전략을 짜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미국과의 정상회담 일정을 먼저 잡거나 향후 경제협력 및 종전선언 논의를 염두하고 중국과의 대화 일정을 먼저 확정한 뒤 우리 측과 최종 일정 조율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북한전문 여행사인 INDPARK에 따르면, 북한 여행사들은 지난 10일 북한 국내 상황 때문에 오는 11일부터 내달 5일까지 어떠한 단체 여행도 중단하겠다고 중국 여행사들에 통지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자국 내 중요 행사가 있으면 다양한 명분을 들어 외국인 입국을 통제시킨 바 있다. 이에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을 앞두고 열병식을 거행하거나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고위급 인사가 방북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우리 측은 남북정상회담을 빨리 열길 원하기 때문에 어제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전에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고 본다”며 “북한은 일단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대략 합의하면서 북미 또는 북중정상회담 일정 조율을 함께하려는 것 같다. 특히 북중정상회담 시점을 잡는 것과 연관 지어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조절하려는 듯한 모습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가을 정상회담 일정을 공개하지 않은 데는 북한이 우리 측에게 한마디로 평양 방문 시 성과물을 갖고 와라.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며 “구체적으로 남북경협, 종전선언 등 문제를 남한이 미국과 설득해서 북한에 올 때 구체적인 로드맵을 갖고 오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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