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에 업체별 화재 통계 공개 요청‧정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급물살…“질적 성장 계기로 이어져야”

지난 9일 오전 7시 50분께 경남 사천시 남해고속도로에서 A(44)씨가 몰던 BMW 730Ld에서 불이 났다. 불은 차체 전부를 태우고 수 분 만에 꺼졌다. / 사진=연합뉴스

BMW의 연쇄 화재가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경쟁사들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긴커녕 ‘불똥이 튈까​ 한껏 긴장하는 모양새다. 차량 화재를 바라보는 여론 시선이 따가울 뿐더러 소비자 불안감이 높아진 까닭에 덩달아 ​불자동차​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의지를 보이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는 점도 위기감으로 작용한다. 제조사의 차량 결함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업계의 질적 성장, 소비자 편익이 증진될 제도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도 나온다. 


최근 수입차 뿐만 아니라, 국내 완성차의 잇단 화재 사고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 9일엔 하루 동안 5건의 차량 화재 사고가 발생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BMW 730Ld, 320d 모델 뿐만 아니라, 국내 완성차인 르노삼성 SM5 , 현대차 에쿠스·아반떼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에쿠스 사고에선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차량 화재 사고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지난 6일엔 한국GM의 말리부와 현대차 그랜저에도 화재가 일어났다. 

 

다만 아직 이들 사고 차량은 정확한 화재 원인에 대한 감식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업계선 차량 연식이 오래 돼 부품 노화나 정비 과실, 폭염 등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발화됐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자체 결함에 대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지만,차량 전소 정도가 심할 경우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화재 사고 특성상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BMW뿐만 아니라 여타 수입사나 국내 완성차의 제품도 전수 조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국내서 운행되는 완성차, 수입차의 업체별 화재 통계를 공개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브랜드별 자동차 화재 사고 면밀히 밝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연간 일어나는 기타 화재사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투명하지 않으며 보상대책 및 정책조차 없다​며 ​한 브랜드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전체 자동차 업계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통해 소비자 보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엔 하루 만에 2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


연일 화재 사고가 보도되며 소비자들은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상황 탓에 이 같은 요구에 더 힘이 실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소방청 관계자는 ​차량 결함과는 무관하게 발생한 건수도 포함돼 집계되기 때문에 특정회사 차량이 화재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왜곡될 수 있어 공개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업체들로선 이 같은 상황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완성차, 수입차 업체들은 경쟁사의 악재로 인한 반사이익을 기대하기보다 차량 화재 이슈가 빨리 사그러지길 바라는 분위기다. 화재 원인 규명도 안 끝난 상태에서 이슈가 옮겨 붙게 되면 ‘불자동차​라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BMW 연쇄 화재와 하루 평균 14건 이상 발생하는 화재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결함 사실이 분명할 경우 제작사가 빠르게 시인하고 결함시정(리콜) 대처에 나서야 하는 것은 맞다”며 “다만 차량 화재는 엔진뿐만 아니라 외부 요인, 전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발생한다. BMW 사태는 특정 차종에서 특정 부품에 대한 결함이 분명하기 때문에, 원인 규명이 안 된 모든 화재 사건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BMW 화재 원인을 두고도 아직까지 이견이 분분한데 특정 연식의 특정 모델, 특정 부품으로 원인이 좁혀져 사태가 빨리 일단락되길 바란다”며 ​BMW 화재가 잦았던 탓에 디젤 차종의 화재 가능성이 높다는 막연한 인식도 위험하다”고 전했다.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는 점도 업계 부담을 가중하는 대목이다. 지난 8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강화하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협의할 예정이며, 늑장 리콜이나 고의로 결함 사실을 은폐·축소하는 제작사는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엄중한 처벌을 받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고의, 악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한 제조사가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지불하게 하는 제도다. 단순 손해배상을 넘어 형사 처벌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선 높은 배상금을 물리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단기간 안에 법안이 통과되긴 어렵지만 국토부가 여론 질타에 연일 행정적 움직임을 보이는 점도 불안을 더한다.

다만 차량 결함에 대한 제조사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소비자 편익이 증진될 제도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그간 제작사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이 큰 상황에서 소비자가 차량 결함 원인을 직접 규명하고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정부는 제작사를 더 강경하게 압박해 결함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번 기회를 계기 삼아 업계 전반의 질적 성장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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