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상관 지시 따랐을 뿐, 재판 본질 침해할 수도”…검찰 “납득할 수 없어”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퇴임식을 마친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초상화를 지나쳐 대법원 중앙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과 위안부 소송의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검찰이 법원행정처 전·현직 심의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관 등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됐다.


법원에서 강제징용 및 위안부 관련 재판거래 의혹 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법원은 지난 2일 행정처 사법지원실 국제심의관실 및 전·현직 심의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1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10여 건을 모두 기각했다.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 관련 소송, 법관 인사불이익 관련 소송 등 4가지 사안과 관련된 것들이다. 

검찰은 먼저 법관 해외 파견을 위해 외교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강제 징용 소송 등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문건을 작성한 전·현직 행정처 심의관들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행정처 사법정책실·기획조정실·사법지원실 등이 징용 소송 등을 미루는 대신 외교부 등으로부터 법관 해외 파견 자리를 얻어내는 내용의 문건을 잇달아 작성하고, 실제 외교부 등 관계자들을 접촉해 접대한 정황은 검찰 수사와 복수의 언론보도로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외교부 관계자들과 접촉한 전·현직 심의관들은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며 기각했다. 압수수색을 하려면 그 이상의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소명하라는 취지다.

둘째는 강제징용 사건 관련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연구관에 대한 영장이다. 이에 대해 박 부장판사는 “재판연구관들이 사건을 검토한 것일 뿐”이라는 논리로 영장을 기각했다.

셋째 전·현직 주심 대법관 등에 대한 영장이다. 검찰은 대법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드를 대법원 1층 자료검색실로 제출받아 그 자리에서 행정처 참관아래 관련 자료만 추출하겠다는 식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 자료들은 이미 충분히 제출됐고, 제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9명이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신일철주금 등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가 의심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대법원 소부는 2012년 5월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2013년 8~9월 같은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대법원은 5년째 심리를 미루다 지난달 갑자기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이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견해를 보이면서 최종 판단이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법관 인사불이익과 관련된 법원행정처 인사자료에 대한 영장도 기각됐다. 박 부장판사는 “대상 법관이 직접 ‘통상적인 인사패턴에 어긋나는 인사불이익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정도의 소명이 필요하다”면서 “법원행정처에 요구하면 관련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각했다.

검찰은 구체적인 영장 기각사유를 알리며, 법원 판단에 상당한 불만을 표했다. 검찰은 최근 재판거래 의혹을 둘러싼 법원의 영장발부 기준을 두고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법관과 관련된 잇따른 영장기각을 두고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 ‘방탄 법원이다’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흠결이 있기 때문에 기각되는 것이지 법원 구성원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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