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와 발전시설 부족한 국가들도 에어컨 마음껏 켜…누진제 개선 차질없이 진행해야

어려운 이야기 거두절미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의 국민들에게 여름철에 에어컨을 마음대로 켜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일까. 그것도 여름철에 40도까지 육박해 동남아로 피서간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나라에서 말이다. 그리고 정작 그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보다 에어컨을 펑펑 켜도 블랙아웃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이야기다.

 

필자는 평소에도 쓸데없는 전력소모는 아끼려고 애를 쓴다. 집에서도 최소한의 불만 켜고 에어컨 온도도 정부 권장 온도보다도 높게 책정하고 사용도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불필요한 전기소모가 싫어서다. 하지만 이렇게 생활함에도 에어컨 사용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대해선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누진제다. 누진제는 1970년 대 오일파동 때 전력소모를 줄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대략 40년 전이다. 누진제는 쓰는 것에 비례해 전기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요금을 더 걷는 징벌적인 성격이 있는 제도다.

 

일반 국민들이 누진제를 염두에 둘 때 떠올리는 소비는 에어컨 밖에 없다. 즉 징벌적인 누진제를 계속 유지하면 국민들은 무서워서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에어컨을 쐬기 위해 냉방시설이 되는 곳들로 모여든다. 그 결과 그런 장소들도 그리 시원하지 않아 한 손에 선풍기나 부채를 꼭 들고 다닌다. 인천국제공항은 더위를 피하러 오신 어르신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이용객들의 불편도 이해가 가지만 오죽하면 공항 까지들 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어컨 사용이 전력 부족을 야기 시킨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논쟁이 많다. 이상한 것은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작은 나라에서도 에어컨을 시원하게 가동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나라를 놀러갈 때 여행사에서 냉방이 강하니 겉옷을 챙겨가라는 당부를 할 정도다. 심지어 그 나라는 1년 내내 여름이라 늘 에어컨을 가동한다. 한국은 공공장소에 전력 낭비를 줄인다며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나라에서도 그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만난 한 외국인은 한국은 실내 시설을 가도 별로 안 시원하다고 말했다

 

백번 양보해 전력시설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발전소 중 최대의 전력을 발생시키는 시설은 원자력발전소다. 그런데 한국이 원전 개수가 세계 10위안에 들고 국가 면적 당 원전개수는 1위라고 한다. 지난 정부에선 전력 예비율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며 마치 일기예보 하듯 여유 전력이 얼마나 있는지 알리기도 했다.

 

무슨 복잡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정도 경제규모와 발전시설을 보유한 국가에서 에어컨을 쐬는 것을 사치처럼 여기게 하니 전력당국 전력 관리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닐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번 정부에선 에어컨 켜지 말라는 훈계 없이 전력 체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실감하고 있어 주목된다. 올 여름 내놓은 누진제 개선책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강구한다면 역사에 남는 정부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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