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금고화 방지‧IT기업 기준 ‘논의 필요’…전문가들, 레버리지효과 지적도

정의당 추혜선 의원실 주최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문제점 진단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에 한해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언급하면서 관련 법 개정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IT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여야도 지난 8일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부작용을 언급하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의 순기능보다 예상되는 부작용이 많다는 게 주된 비판 이유다.

◇가장 큰 우려, 기업의 은행 사금고화

은산분리 완화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기업 등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화할 가능성이다.

현재 국회에는 총 5건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관영,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3건과 강석진,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 2건 등이다. 이들 법안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 즉 기업의 지분 보유한도를 현행 4%(의결권 없는 지분 10%)에서 34% 혹은 50%까지 확대하도록 했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간 지분 보유한도가 4%로 제한돼 있었던 건 기업이 은행에 있는 국민 예금을 금고 돈처럼 끌어다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보유한도가 국회 발의안에 따라 34% 혹은 50%로 완화될 경우,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를 열고 “은산분리 규제완화는 은행을 재벌 사금고로 만드는 것”이라며 “왜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어떤 정권도 손대지 못했던 경제 원칙을 훼손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금고화를 막을 방식은 일찌감치 논의가 진행 중이다. 현행법에선 은행 대주주에 대해 자기자본의 25%까지 신용공여를 할 수 있게 했다. 이 한도를 10% 수준으로 더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신용공여를 아예 금지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개인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즉 재벌의 경우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현 4% 한도를 지키게끔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카카오뱅크에 투자한 카카오가 총수 집단에 해당될 수 있어 추가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인터넷은행 지분 보유할 수 있는 ‘혁신 IT기업’, 기준은 무엇

물론 모든 기업이 인터넷은행을 사금고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재호 민주당 의원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6년 각각 대표발의한 특례법에서는 ICT기업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해놨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도 '혁신 IT기업'의 투자 확대다.

그러나 이 혁신IT기업 또는 ICT기업의 경계가 모호해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분을 더 보유할 수 있는 기업의 경계가 모호할 경우 더 많은 기업들이 은행 지분 소유에 나설 수 있어서다.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8일 춘추관 정례브리핑에서 ‘혁신 IT기업’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열릴 것”이라며 추가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 다른 지적, 레버리지효과

또 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시장경쟁의 왜곡을 초래하는 레버리지효과(leverage effect)도 부작용으로 지적됐다. 인터넷은행에 한해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투자기업이 은행을 이용해 경쟁 업체에 압력을 행사하는 등 공정한 시장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도 은근히 부도율이 높은 경우가 있다. 이런 기업들이 의결권 있는 지분을 확대 보유하게 되면 은행을 자본 조달 창구로 쓸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자기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 체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결권 없는 지분 한도를 조금 완화해줄 순 있어도 의결권 있는 지분까지 건드리면 안될 것”이라 덧붙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7일 토론회에서 “예컨대 삼성이나 SK가 은행 경영권에 개입하게 되면 자기 계열사나 하청기관에 거래를 압박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규제 완화로 인터넷은행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새롭게 등장할 인터넷은행들이 쉽게 부실화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경우엔 인터넷은행 육성을 위해 완화했던 규제가 도리어 인터넷은행 사업을 해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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