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비이자이익 견인과 고령화, 1인 가구 증가에 신탁 역할 커질 것”

은행권에 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저금리·저성장의 장기화와 실물경제 여건 악화로 은행권이 이자이익만으론 수익성을 높이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은행마다 새로운 이익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때 떠오르는 게 바로 신탁사업이다.

은행의 이자이익은 서민 빚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경기 악화와 차주의 부채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은행의 역대급 실적은 급속한 자산 부실화로 변질될 수 있다. 이자이익은 모래 위에 지은 성일 수 있다. 금융당국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자이익에 치중한 은행의 실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권도 이 점을 인정하고 수수료이익 증가를 꾀한다.

김창원 KB국민은행 신탁그룹장은 “이자이익이 은행 이익의 근간이 되는 것은 맞지만 수수료이익을 더 창출하려는 노력이 은행권에 필요하다”며 “신탁의 역할이 금융권에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KB금융지주의 수수료이익은 1조2247억원을 기록했다. 4대 금융사 중 큰 규모다. 1년 전보다 18.8% 늘어났다. 이번 수수료이익은 은행 신탁이 견인했다. 신탁이익은 2972억원으로 3000억원대 이익을 코앞에 두고 있다. 1년 전보다 29.8% 크게 늘었다.

KB국민은행 신탁그룹의 김창원 대표(전무)를 6일 만났다. 서울 여의도 세우빌딩 10층에 위치한 김 대표 사무실에서 보면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의도 불꽃축제 등 한강을 보기 좋겠다는 질문에 김 대표는 웃으며 “불꽃축제만 아니라 한강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 정도로 항상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하는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국민은행의 신탁 이익이 굉장히 많이 증가했다. 예상은 했나.

“실적에 대해 상시로 체크하고 있어 이번 상반기 이익 증가에 대해서는 예상하고 있었다.”

-신탁 이익 성장의 비결을 어떻게 보는가.

“영업 현장에 있는 직원과의 소통 강화, 소비자 요구에 맞춘 서비스 개발, 제도 프로세스 개선 등 세 가지 요소가 맞물려 나왔다고 본다. 먼저 영업 현장에 있는 직원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강화했다. 집합교육 방식의 KB신탁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분기별로 운영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시장에 이슈가 발생할 경우 바로 회의를 진행한다. 클라우드 연수 시스템도 도입했다. 본부에서 교육자료를 만들면 클라우드에 올려 영업점에서 바로 공유할 수 있다. 시공간 제약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한다. 고객 투자성향 분석을 할 때 인위적으로 투자성향을 높이는 경우가 없도록 투자성향 분석 횟수를 1일 1회로 제한했다. 초고령 투자자에게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 경우 판매실적을 영업실적에 인정하지 않는다. 고령 투자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불완전판매를 할 가능성이 높아 실적과 관계없이 정확한 판매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올해 초부터는 파생결합상품을 판매할 때는 판매 과정을 녹취하도록 했다.” 

 

김창원 KB국민은행 신탁그룹장. / 사진=노성윤 사진 기자


-은행에서의 신탁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최근 은행권의 비이자이익 증가가 중요해졌다. 신탁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최근까지 은행권에선 신탁을 통해 개별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형태가 주를 이뤘다. 이것이 차후에 법적 규제 완화 등으로 은행이 신탁을 통해 종합적이고 유연한 자산관리를 할 수 있게 되면 더 많은 발전이 가능하다. 종합자산관리가 신탁 본연의 기능이기도 하다.

신탁은 고객 사후까지 그 자산을 관리,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근 고령화 사회 심화, 상속·증여 관심 증가 등 사회 변화에 맞춰 은행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아울러 최근 은행 고객들도 저금리로 인해 예금보다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에 신탁이 역할을 할 수 있다.”

-KB국민은행 신탁그룹에서 내놓은 상품들을 소개해 준다면?

“지난해 말에 출시한 KB금지옥엽(金枝玉葉) 신탁이 있다.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상품을 고민해 만들었다. 조부모가 손주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하고 싶을 때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주의 대학입학, 자동차구매, 결혼 등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자금을 지급하거나 조부모 사후에도 손주에게 용돈 등을 지급할 수 있는 방식이 가능하다. KB한울타리신탁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사후에 홀로 남겨질 자녀에 대한 경제적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상품이다.

정기예금보다는 중위험·중수익을 원하는 고객을 위한 주가지수연계신탁(ELT)의 경우에도 조기 상환을 원하는 고객이 있어 ‘더빠른 ELT’를 만들었다. 아울러 안정성과 조기상환을 모두 중시하는 리자드형 ELT, 월 생활비 형태로 받을 수 있는 ‘월 이익지급식 ELT’도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4차 산업 혁명과 관련해 대표적인 미국 기술주들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신탁 상품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경기 침체 등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주식연계신탁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주가는 상승할 수 있고 하락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탁 상품을 만들 때 주가 하락에 대비해 설계한다. ELT의 경우 주가 하락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배리어 수준을 안전하게 설계해 놨다. 이에 주가 하락이 발생해도 일정 수준을 하회하지 않으면 손실을 막고 수익 상환을 할 수 있다. 시장의 침체 폭이 더 깊어지면 시장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창원 KB국민은행 신탁그룹장. / 사진=노성윤 사진 기자

-금융당국의 신탁 시장에 대한 규제가 견고하다. 이런 신탁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진 않나.

“현재 수탁이 가능한 재산의 범위가 자본시장법상 7가지로 한정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보험금 청구권이나 영업권, 담보권 등에 대한 신탁이 불가능하다. 포괄적인 수탁이 안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런 규제를 풀고 종합재산관리가 가능하도록 해 놨다. 아울러 특정금전신탁에 대한 광고, 홍보가 제한돼 있다. 이 규제를 낮춰준다면 고객들에게 상품 정보에 대해 접근성을 높여주고 상품에 대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비대면으로 신탁 신규 계약을 허용한다. 증여 등 복잡한 상품이 아니면 비대면 가입이 가능해 편리하다. 국내 금융권은 빠르게 디지털화 되고 있다. 비대면 가입을 제한한 것은 이러한 금융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울러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방문판매 시 14일 이내에 계약 철회가 가능하게 돼 있는데 이 점도 상품 성격에 따라 예외가 필요하다. 금융투자상품은 시장의 변화에 따라 가치가 계속 달라진다. 가입 후 이미 운용에 들어갔기 때문에 계약 14일 만에 계약 철회가 된다면 운용에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에도 이런 부분 때문에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민이 필요하다.

업무를 위탁받은 것을 다시 재신탁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본시장법상 본질적 업무에 대해서는 신탁회사가 업무를 위탁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시행령에는 대부분의 업무가 본질적 업무에 해당돼 실질적으로 금융회사가 업무를 위탁할 길이 없다. 그럼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융자산,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을 가지고 있을 때 종합적으로 관리받기 어렵다. 결국 복수의 여러 금융회사와 거래하고 계약해서 자산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국내 신탁시장은 외부적 규제 환경이 완화 된다면 더 큰 성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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