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미아 리콜건도 소비자 제보로 알려져…정부·업체는 제 역할 하고 있나

약자가 약자를 구하는 플롯은 뭉클하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은 건설 일용직인 가난한 남자가 가정폭력 피해 아동을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뜨거운 다리미에 눌린 자국이 있는 작은 아이를 구한 남자는 사실 일용 근무 외에도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만비키(万引き)다. 남자가 아이를 데려간 곳에는 할머니 1명과 여성 2명, 남자아이 1명으로 구성된 ‘어느 가족’이 있다. 약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서로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 가족은, 그러나 상처 입은 아이를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 정성스레 맞아들인다. 아이는 그 속에서 최초의 안정을 느낀다.

감독 특유의 따뜻한 가족 정서에 젖어들때쯤, 관객은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맞게 된다. 이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일본의 수사기관과 언론은 이들을 사회의 구석으로 내몰아간다. 당신이 엄마라고 불린 적은 있나요? 당신은 아버지가 맞나요? 당신들이 가족인가요? 정작 약자가 면벽의 고통으로 신음할 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던 거대 구조는 무능하고 무감해서 폭력적이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의 마음은 저릿하다. 이 모두를 꿰뚫는 감독의 시선이 바로 영화가 칸의 정상에 설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약자가 약자를 구하는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에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자체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신세계 까사미아 토퍼 제품 리콜의 발단은 소비자 제보였다. 지난 6월 소비자 제보를 받은 까사미아가 정부에 이를 알리면서 정밀 조사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지난달 3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까사미아의 까사온메모텍스 제품에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 따른 안전기준인 연간 1밀리시버트(mSv)를 초과한 방사선량이 검출됐다며 해당 업체에 수거 명령을 내렸다.​

소비자 제보로 문제가 드러났다는 말은 소비자 제보가 없었으면 문제의 인지도, 해결도 없었을 거라는 말과 같다. 사실상 괴담이다. 소름이 끼치는 대목이다.

더욱 답답한 부분은 정부와 업체가 지난 5월 대진침대 라돈 매트리스 사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대진침대 이외 49개 침대 타 매트리스 제조업체에 대해서도 현장조사를 통해 모나자이트 등 관련 첨가물질 사용 여부를 확인한 바 있다. 다만 이같은 조사 목록에 까사미아 브랜드는 아예 제외됐다. ​​국내 곳곳에 매장을 운영하는 매출 1000억원대의 가구 브랜드를 쏙 빼놓고 얼마나 꼼꼼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알 길이 없다.

까사미아 역시 당시 조사 목록에서 자사가 제외됐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다. 자신들이 파는 제품군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인 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까사미아는 지난 5월 라돈 사태가 발생한 이후, 현재 판매 중인 제품에 대해서는 안전성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문제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2011년 판매된 제품이라 소급 조사가 어려웠다면, 이는 뒤집어서 과거 판매한 여타 제품에도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위험한 시인이기도 하다. 


정부는 아직까지도 대진침대 매트리스 수거 작업 중이다. 한 달 안에 수거를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수거만 세 달 째다. 사실상 무능에 가깝다. 까사미아는 현재 리콜을 진행 중이다. 한 달 내로 모든 제품을 수거하겠다고 밝혔다. 세 달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두 사태는 애초에 같은 사태다. 

 

소비자가 소비자를 구하는 일은 사실상 운(運)에 가깝다. 운에 국민의 안전을 내맡길 순 없다. 거대 권력인 정부와 업체가 멀쩡한 제품 판매를 보증하고, 똑똑한 조사를 벌이고, 합당한 대처를 해야 하는 이유다. 무능한 권력은 그 자체로 폭력이기 때문에.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