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술기업, 해외서 투자 유치…투자자들은 해외 프로젝트에 자금 넣어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IPO가 주주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라면, ICO는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같이 책임지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비즈니스다. 우리나라는 이 비즈니스 수단을 막았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블록체인 컨퍼런스 ‘후오비 카니발’에서 강연을 펼친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ICO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ICO는 한마디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가진 사업자가 기술 기반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3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세계 ICO 투자액은 나날이 늘고 있다. 2016년 2억2000만달러였던 ICO 투자액은 지난해 32억달러로 급증했다. 올해에는 1분기에만 약 26억5000만달러가 모였다.

이처럼 ICO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ICO 전면금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에서 ICO에 전면금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곳은 한국과 중국뿐이다. ICO를 빙자한 사기 피해를 우려한 정부는 지난해 9월 “모든 종류의 ICO를 금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으나, 명시적인 금지 법안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ICO 관련 법안이 나오기 힘든 이유는 가상화폐의 정의조차 법적으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31일 가상화폐 관련 입법이 처음 추진됐지만 그 후 1년 간 진전이 없는 게 그 원인이다.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성격이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모집 단위로 한 ICO 역시 국내법상 그 성격을 명확히 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국내 유망 블록체인 기술, 투자금 모으러 해외로

문제는 ICO가 단순히 금지돼 있던 약 1년동안 국내 기술력이 모두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관련 프로젝트를 유치하기 위해 해외서 ICO를 진행하고 있다. ICO에 개방적인 스위스, 싱가포르 등에 법인을 세우고 투자자를 모집하는 식이다.

지브롤터에서 ICO를 준비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ICO에 대한 구체적 법안이나 처벌 사례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후에 문제가 생길 것이 우려된다. 때문에 국내 스타트업들은 ICO에 친화적인 해외 국가에서 투자금 모집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부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가상화폐 없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후오비 카니발 강연에서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순간 블록체인 산업 활성화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블록체인 상 경제의 가치표현 수단 및 지불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블록체인 기업들은 기술 개발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암호화폐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 산업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자자금도 해외로 샜다…부작용 규제‧ICO 부분허용 등 대안 나와야

국내 블록체인 기술에 쓰일 수 있었던 투자자금 역시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미 해외에서 ICO를 선보인 가상화폐 프로젝트들은 잇따라 한국을 찾아 국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한국 투자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전 위원장은 국가를 뛰어넘는 블록체인 경제를 ‘블대륙’이라 표현하며 “블대륙과 실제 경제를 어떻게 연관 짓는지에 따라 국가의 경제적 이익 정도가 달라진다”면서 “우리나라는 블대륙에서 번 돈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는 항구를 막았다. 돈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이라 강조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관련 자금이 모두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이에 ICO를 허용한 뒤 그에 따른 부작용을 규제하거나, 일부 조건을 갖춘 블록체인 기업들에만 부분적으로 ICO를 허용하는 등의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사기 피해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ICO를 전면 금지하기엔 그에 따른 피해가 막대하다는 게 이유다.

박 센터장은 “인터넷 발전에 정보 유출 등 단점이 따르는 것처럼, 모든 산업 발전에는 역기능도 함께 따른다. ICO를 허용한 뒤 그에 따른 부작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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