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에어도 노조 설립, 수직적 조직 구조‧업계 체질 개선 기대… 파업권 확대 시 산업 경쟁력 약화‧운항 안전문제 우려도

지난달 25일 오후 7시 서울시 정부서울처사 앞에서 진에어 직원들이 '진에어 직원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토부 갑질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 사진=윤시지 기자
항공업계 오너리스크가 이에 대응한 항공사 직원들 노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한항공 물컵 갑질,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후 양사 노조 규모가 확대된 가운데 진에어 직원들도 항공면허취소 기로에 서면서 노조를 설립했다.

 

3일 진에어에 따르면 이 회사 직원들은 면허취소 반대에 힘을 싣기 위해 지난 2일 노조를 설립했다. 앞서 저가항공사(LCC) 중에는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등이 조종사 노조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LCC 6개사 중 4개사가 노조 설립을 마쳤다.

 

진에어 노조는 표면적으론 상위 단체 가입 없이 순수 직원 노조로 출범했음을 강조했다. 직원들의 뜻을 모으는 창구로 기능하며 진에어 면허취소 반대에 우선 집중한 뒤, 향후 임단협 등 노조 본분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위원장 직선제, 임협시 조합원 찬반 투표 등을 규정을 내세운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1900여명 중 과반수 이상 가입을 목표하고 있다.

 

진에어 모회사인 대한항공도 지난달 한국노총 소속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노조로 출범했다. 지난 4월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물컵 갑질'로 불거진 오너 일가에 대한 불신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수직적 기업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옮겨갔다.

 

직원연대지부는 오너 일가 퇴진과 직원 처우개선 요구에 집중하며 노조 정체성을 부각할 방침이다. 이로써 대한항공 노조는 기존 한국노총 소속 일반노조, 민주노총 산하 조종사 노조, 상위 단체 없는 조종사 새 노조와 함께 4개 단체로 늘었다. 직원연대지부 노조는 간선제를 채용한 기존 일반노조와 달리 직선제를 도입해 차별성을 두기로 했다.

 

상황은 아시아나항공도 다르지 않다. 기내식 대란을 빚은 아시아나항공은 직원들의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집회가 잇따르며 노조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3개 노조 중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은 최근 총수 일가 퇴진 직원집회를 주관하면서 직원들의 노조 가입을 이끌어왔다. 노조 관계자는 현재 정확한 인원수는 밝힐 수 없지만 집회 이후 노조 가입자수가 늘고 있다. 조직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이 같은 노조 확대 기조를 반기는 눈치다. 항공사 노조들이 상위 단체에 합류할 경우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해제 요구에 점차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필수공익사업은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될 경우, 대다수 공중의 일상생활이 위태로워지거나 업무의 대체가 어려운 사업을 말한다.

 

현행 노조법은 항공운수사업을 필수유지업무로 지정해 업무가 최소한으로 유지, 운영될 수 있도록 인원과 직무를 노사 협정 등으로 정해야 할 것을 규정한다. 운항에 차질을 빚거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공중이 받을 피해 규모가 막대하다는 이유에서다.파업을 할 순 있지만 업무유지율을 근거로 운항에 필요한 인력은 남겨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항공사에선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왔다. 양대 대형사의 경우 노동위원회 및 노사협정에 따라 파업 참여 인원이 결정됐다. 대한항공 조종사의 경우 기종별 업무유지율은 73%~80%, 아시아나항공은 61%~80%의 업무유지율을 규정하고 있다. 조종사가 2000여명일 경우 500명이 채 안되는 인원만 파업이 가능한 셈이다. 업종 특성상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큰 조종사와 달리 화물, 정비, 영업, 승무원 등 직군 근로자들은 더욱 목소리를 더욱 내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는 이 같은 쟁의권 규제를 완화해 경영진을 견제할 파업 동력을 확보하고 업계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박성우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장은 파업권은 헌법상 기본권이기 때문에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될 수 있어야 한다. 항공사가 파업한다고 해서 모든 항공사가 함께 파업하는 것은 아니며 대체할 수 있는 매체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파업을 공익을 현저히 위협하는 행위로 봐야할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정말 예외적으로 공익을 위협할 대규모 파업이 발생할 경우 파업을 중단하는 사후대응 조치도 갖춰져 있다. 현행 노조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의 긴급조정결정에 따라 파업을 중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선 항공사가 감당할 노조 파업 리스크가 커지면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강하게 제기된다. 항공사 노조가 한노총, 민노총 등 상위 단체와 연합한 강성 노조로 변질될 시 완성차, 조선업계처럼 해마다 파업이 잇따를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운항 차질을 겪으며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 근로자들은 전문직종과 일반직종으로 나뉘고 근로 환경상 입장차가 큰 까닭에 노조마다 성질과 요구가 다르다""회사 측에서 노조 관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노조가 내세운 조직 개선이라는 초기 명분은 뚜렷하지만, 결국은 이런 사태가 다 지나가면 회사와 임금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본다. 회사 차원에선 노조 관리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이번 기회에 세력 확대를 기대하는 상위단체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항공업계가 호조를 누리긴 하지만 최근 분위기에 힘입어 강성노조가 탄생하게 되면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조 파업권 확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선 항공 안전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준공공재 성질을 갖는 항공운수업 특성상, 잦은 파업은 항공 사고로 직결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근로자의 쟁의권만큼이나 공중의 안전성도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허 교수는 "항공사들의 갑질 이슈를 두고 노동계는 근로자의 파업권이 강화되면 업계 체질이 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항공사의 독과점, 수직적 구조는 기업 차원의 문제며, 항공운송업이라는 산업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있어야 한다""항공운송이 민생과 관련해 여타 산업과 달리 유독 공공성이 짙은 산업이기 때문에 안전 문제를 고려하는 방향에서 접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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