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공백 최근들어 심화…"처우 낮고 부담 높은 점 개선할 필요있어"

국민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이 난국에 빠졌다. 기금을 운용해야 할 인력들의 유출이 심해진 탓이다. 기금 운용을 진두지휘할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는 1년 넘게 공석 중이고 실장급에서 말단 운용역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 도입 30년을 자축해야 할 시기에 잦은 인력 유출로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동시에 국민 노후자산 600조원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장 부재가 크다. 국민연금 CIO 자리는 지난해 7월 17일 강면욱 전 CIO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표를 제출하고 물러난 뒤 지금까지 1년 넘게 비어있다. 이는 국민연금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CIO는 올해 4월 말 기준 634조원 가량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진두지휘하는 중요한 자리다. 내부 시스템과 지침에 따라 기금이 운용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인 목표수립, 운용철학 제시, 중요 투자판단을 해야할 CIO의 공백 장기화는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다.

CIO 자리에만 먼지만 쌓이는 게 아니다. 운용에 나서는 인력도 국민연금을 떠나고 있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아 공개한 ‘최근 5년간 기금운용본부 퇴사자 현황’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 퇴사자는 2013과 2014년 각각 7명, 9명에 불과했지만 2016년, 2017년에는 각각 30명, 27명으로 늘었다. 올해도 1~7월 사이에 16명이 국민연금을 떠났다. 기금 운용직 정원이 올해 278명인 점을 감안하면 퇴사율만 30%에 육박한다.
 

특히 기금 운용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는 실장·팀장급 이탈도 나오고 있다. 조인식 국민연금 전 CIO 직무대리(해외증권실장)가 이달 초 국민연금을 떠났다. 비슷한 시기 고성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 뉴욕사무소장도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최근 김재범 대체투자실장도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미 공석인 해외대체실장, 주식운용실장, 해외증권실장 자리에 이어 대체투자실장 자리도 공석이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고용이 줄고 취업난이 해소되지 않는 한국의 경제 상황을 비춰보면 이 같은 상황은 이해가 쉽사리 되지 않는다. 특히 국민연금 CIO는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힘을 가진 자리가 아닌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려면 CIO 공석 사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장기간 CIO 공석 사태는 본질적으로 결국 능력있는 인사가 지원하지 않고, 또 찾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같다”며 “CIO 자리는 과도한 책임에 비해 낮은 수준의 연봉,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비독립적인 환경 속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업계에서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 능력자가 굳이 나서서 CIO를 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CIO 인재를 영입하고자 현재 3억원 안팎인 CIO의 연봉을 두 배 수준으로 올리는 등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국민 노후 자금을 책임진다는 부담에 비해 큰 매력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 정도의 실력이 있는 인재라면 차라리 자산운용 업계에 남아 국민연금 연봉보다 높은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 더 낫다는 풀이다. 이는 CIO뿐만 아니라 다른 운용역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처우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부분도 인력 유출 원인으로 꼽힌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수도 중요하지만 국민연금이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정치인들이나 감사기관, 심지어 언론까지 국민연금의 1년 수익률을 놓고 평가한다”며 “그리고 1년 성과가 저조하면 CIO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자금을 운용하는 입장에선 압박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결국 CIO 자리는 독든 성배일 뿐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 본사가 지방에 위치한 점을 인력유출의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국민연금 운용역 자체에 대한 매력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결국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은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선 고민을 더 깊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 인력을 충원하고 처우를 높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국민연금 본부가 어느 위치에 있든 오랫동안 머물 수 있을 만한 매력적인 제반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 노후도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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