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4300억원보다 적은 금액으로 금감원과 다투기 어렵다”

왼쪽부터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본사 모습 / 사진=시사저널e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의 ‘미지급 즉시연금 일괄구제’ 요구를 거부하고 나섰지만 생명보험업계는 삼성생명과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이 즉시연금 미지급금 해결을 금융감독혁신 첫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제시한 해결안을 삼성생명처럼 거부하고 당국과 대치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 큰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27일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 중 일부만 지급 결정했지만 이 결정이 업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생명에 떨어진 금액은 굉장히 크다. 다른 생보사들이 내야 할 금액은 그에 비하면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금감원과 이 사안을 두고 전쟁을 원치 않는다. 일괄구제 방안을 보다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삼성생명에 일괄구제로 지시한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43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삼성생명 이사회는 지난 26일 즉시연금 미지급금 처리와 관련해 금감원의 일괄구제 요구를 거부하고 일부 지급을 결정했다. 해당 상품 가입고객에게 제시된 가입설계서 상의 최저보증이율로 정한 예시 금액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삼성생명이 지급 결정하기로 한 금액은 370억원이다. 금감원이 지시한 금액의 8.6%에 불과하다. 삼성생명 이사회는 이번 결정에 대해 일괄구제의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과 함께 생보업계 빅3로 불리는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규모는 이보다 적은 850억원, 700억원이다. 신한생명과 AIA생명 등 일부 생보사는 일괄지급을 하겠다는 의사를 금감원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화생명과 교보문고 등을 비롯한 나머지 생보사들은 일단 금감원이 삼성생명의 결정에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보고 즉시연금 일괄구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난 자살보험금도 소멸시효가 지난 건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있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더 강도 높게 나왔다”며 “이번에도 법적 근거 없이도 소비자보호 명목으로 업계가 느끼기에 버거운 카드를 금감원이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삼성생명의 이번 결정으로 금감원 반응이 나올 텐데 업계가 이 반응을 보고 삼성생명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은 다음달 10일까지 즉시연금 일괄구제에 대해 의견을 금감원 측에 전달할 방침이다. 다만 한화생명 측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교보생명도 이와 관련해 결과를 내놓고 있지 않다.

금감원은 삼성생명 결정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즉시연금과 관련해 “소송을 걸어도 보험사에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어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다만 금감원은 윤 원장이 국회 정무위에서 “피해 소비자가 16만명이나 된다. 일괄구제가 사회적 비용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강조했고 또 지난 9일 ‘금융감독 혁신 과제’를 발표하면서 “분조위 결정 취지에 위배되는 부당한 보험금 미지급 사례 등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해 삼성생명의 일괄구제 불수용 입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보호라는 명분이라면 금감원이 제재 등을 고려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자살보험금 때와 마찬가지로 금감원이 비슷하게 나온다면 삼성생명도 이번 결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험사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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