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26일 미지급금 4000억원 지급 여부 결정…업계 '주목'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열린 금융감독혁신 과제 발표를 마친 후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생명보험업계가 자살보험금 악몽을 꾸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조원 가량 미지급된 즉시연금에 대해 일괄구제 방안을 내놓으면서다. 2년 전 생보업계는 자살보험금 미지급금을 모두 내라는 금감원 요구에 버텼다가 CEO 해임 권고라는 고강도 제재에 백기 투항한 바 있다. 

 

현재  즉시연금 가입자는 16만명에 달하고 금감원이 돌려주라는 보험금은 업계 전체로 1조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약 4000억원에 달하는 즉시연금 미지급금 지급과 관련해 오는 26일 이사회에서 결정내릴 예정이어서 그 결과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업계 맏형인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다른 생보사들도 금감원과 맞설 명분이 약해진다. 업계에선 금감원의 일괄구제 방침에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불만을 제기하지만 금감원이 자살보험금 논란 때처럼 고강도 제재를 내릴 수 있어 삼성생명이 결국 일괄지급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즉시연금 논란, 1명의 구제 신청이 1조원으로 커져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이달 26일 이사회를 열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언급한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구제 여부를 논의, 결정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일시에 낸 보험료에서 일정한 이율(공시이율이나 최저보증이율)을 곱해서 산출한 금액 중 만기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떼고 나서 매월 연금을 주는 상품이다.

이번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은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생명 즉시연금에 가입한 A씨는 매달 받는 연금이 계속 줄면서 금감원 분조위에 신고했고 금감원은 조사 결과 약관에 명시하지 않은 사업비 등 공제가 있었다며 "이는 효력이 없다"고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은 즉시연금 약관상 만기에 지급할 보험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사가 사업비를 이유로 지급해야 할 금액을 마음대로 줄인 것은 잘못됐다고 봤다.

이에 삼성생명은 A씨에게 상법상 보험금 청구권소멸시효인 3년을 반영해 연금 미지급금 1400여만원과 지연이자에 따른 이자 60여만원을 돌려줬다. 금감원은 이후 동일한 보험 가입자가 있다면 일괄지급하라고 보험업계에 전달했다. 이렇게 업계에 떨어진 지급해야 할 미지급 즉시연금액은 1조원에 달하게 됐다.

 

윤석헌 금감장은 즉시연금 미지급금과 관련해 보험사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원장은 지난 9일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하며 “즉시연금 미지급금에 대해 일괄구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 취지에 위배되는 부당한 보험금 미지급 사례 등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생보업계 “부실한 약관 승인한 금감원도 책임 있어”

업계에선 금감원이 이와 관련된 사안을 분조위의 결정으로 모두 업계에 떠넘기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선 업계는 금감원이 다수의 피해자가 비슷한 피해를 당할 경우 일괄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생보사가 이번에 일괄구제를 결정하려면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며 “금감원의 정식 공문이 있어야 이사회 결정이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제가 된 약관에 대해서도 업계는 금감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를 일으킬 부실 약관을 검토 승인한 것이 금감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된다. 소비자는 보험사보다 정보가 부족하고 약관 내용에만 의지해야만 한다”며 “이럴 경우 약자는 소비자다. 소비자에게 약관이 유리하게 해석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소비자 피해 발생해 일괄구제 필요하다”

이런 업계 불만에도 불구하고 보험업계는 이번 즉시연금 일괄지급도 결국 금감원의 지시에 따라 지급될 것으로 예상한다. 자살보험금 논란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2년 전 금감원은 자살보험금과 관련해 약관에 따라 재해사망보험금을 소비자에게 지급하지 않고 버틴 생보사에 CEO 해임권고 등 중징계 카드를 꺼낸 바 있다. 이에 삼성생명 등 모든 생보사는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고 백기 투항했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생보업계가 2000년대 초·중반 약관에 자살을 재해로 인정하며 일반사망금보다 액수가 큰 재해사망금을 준다고 하고 상품을 팔면서 발생했다. 보험사는 이후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2010년 약관을 고치고 보험금 지급을 축소했다. 금감원은 잘못된 약관이라도 이를 준수해야 한다며 개정 전 특약 가입자 중 자살한 사람에게 재해사망금을 모두 줘야 한다고 봤다. 이에 중징계를 예고하며 생보업계가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도록 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며 “생보사들이 당시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해 배임의 문제가 생긴다며 버텼지만 중징계 결정이 나온 뒤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도 약관이 문제였고 금감원 책임론이 거론됐지만 결국 금감원 조치대로 지급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즉시연금 약관에 ‘만기보험금에서 사업비 등을 공제하고 지급한다’는 내용이 없다면 고객은 이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일괄구제에 대해 법적으로 불분명하다고 말하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당했다면 금감원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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