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여력, 무디스 안전 기준 2배 넘어…“사회복지 분야 좋은 일자리 만들어야”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어울림마당에서 열린 ‘마포구 일자리 매칭데이’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고용시장 부진과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정부 예산을 늘려 일자리와 복지 분야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정부 부채와 재정 여력은 현재 안정적 수준으로 나타나면서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정부 예산의 두자릿수 이상 증액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지난 12일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정책조정회의에서 “재정의 역할 강화는 일자리 문제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라며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목표만 세우고 재정 역할을 포기했다. 그 결과 경기가 침체되고 출산율은 비정상적으로 낮아졌다.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는데 정부가 곳간에 돈을 쌓아놓고 재정이 건전하다고만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에 반대 의견도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6일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그 동안 국민세금을 물 쓰듯 쓰면서 나라곳간을 거덜 내는 것도 모자라 경제성장을 위한 근본적 처방도 없이 10년 만에 두 자릿수 예산 증가를 추진한다. 이는 나라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무책임의 극치다”고 말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정부 예산안 편성 시 지켜야 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40%)과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2%)을 담았다. 정부가 2년마다 40년 이상 기간의 장기재정전망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 자료=기재부, 이미지=김태길, 조현경 디자이너

현재 한국의 정부 부채는 일반정부 부채(D2) 2016년 기준 717조5000억원이다. 이는 GDP 대비 43.7% 수준이다. 같은 기간 OECD 32개국의 부채 규모는 GDP 대비 평균 113.3%다. OECD 평균보다 70%포인트 가량 낮다. 일반정부 부채(D2)는 중앙, 지방 정부, 비영리공공기관의 채무를 포괄한다.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공공부문부채는 2016년 기준 1036조원 가량으로 GDP의 63% 수준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공부문부채도 국제적으로 안정적 수준이다”고 말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한국의 재정여력은 2014년 5월 기준 241.1%포인트다. 재정여력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게 될 수준의 국가채무비율과 현재 비율 간 차이다. 124%포인트를 넘으면 안전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재정여력 국가별 비교 / 자료=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 무디스 애널리틱스(2014.5),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윤석천 경제평론가는 “현재 자동차, 조선업 등 기존 산업이 정체 상태고 고용도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모두 침체된 상황에서 GDP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정부 지출 확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윤 평론가는 “한국의 국가 채무 비중은 OECD 평균에 비해 건전한 상황”이라며 “정부 지출을 늘려 복지 수준을 확대해야 한다. 실업급여를 확대해 사회안전망을 넓히고 공공 일자리도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장기적 재정 관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재정여력은 OECD 가운데 2, 3위로 좋은 수준”이라며 “1~2년 적자재정을 한다고 해도 신용에 악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고용률이 좋아지려면 사회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복지 지출이 소홀했다. 이에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았다”며 “그 결과 한국은 사회복지 분야의 취업자 비중도 OECD 국가의 절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필요로 하는 사회복지 분야 중심으로 중간 임금의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려야한다. 저임금 일자리로 만들면 안 된다”며 “이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는 국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사회복지 지출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16년 기준 10.4%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34위다. 전체 평균(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복지 지출 확대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현재 시점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 등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복지 확대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소비 여력이 낮아지는 것을 막고, 새출발의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한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최대 기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주요 회원국 중 가장 짧은 측에 속한다. 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최대 실업급여 수급 기간은 7개월이다. 비교 대상 29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짧다. 아이슬란드는 36개월, 스웨덴 35개월, 스페인·포르투갈·노르웨이·프랑스·덴마크는 24개월의 실업급여를 지급했다.

이처럼 부족한 실업급여는 준비 없는 창업으로 이어져 자영업 포화상태를 악화시킨다.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기업가정신 한눈에 보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556만3000명으로 OECD 회원국 등 주요 38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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