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기술 분석 통해 ‘원인 미상’ 판정시 무상수리 불가·기술 분석 소견서도 공개 안 돼…수입차 3强 중 유일하게 원인미상 화재 보상책 전무, “소비자에게 입증책임 전가해 비용 부담” 지적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폴크스바겐 코리아가 차량 화재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을 경우 소비자 보상이 전무한 규정을 앞세워 빈축을 사고 있다. 회사 측은 ‘원인 미상​으로 종결된 화재 사고에 대해서 기책 사유가 없다는 입장이나, 소비자 입장에선 사측이 실시하는 자체검사에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성토한다. 폴크스바겐 코리아와 달리 다른 독일 수입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BMW 코리아는 원인 미상 화재에 대한 보상책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이 같은 내부 방침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원인 미상​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비자 개인이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제3의 기관 등에 추가 검사를 위탁하는 과정 등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까닭이다. 


지난 6일 폴크스바겐 제타 BMT 디젤 모델 2014년식 차주 김아무개씨는 예기치 못한 화재로 차량을 폐차하고 말았다. 이날 오후 4시경 김씨는 주거지 인근 주차타워에 차량을 주차해두고 귀가했다가 1시간가량 후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뒤늦게 달려가보니 인근 소방서의 진압으로 불은 꺼져 있었지만, 차량 본닛에서 번진 불길이 계기반을 포함한 차량 앞부분을 이미 모두 태운 상태였다.

당시 부산진 소방서 화재 감식반 관계자는 주차하기 전 엔진룸에서 불길이 시작됐을 거라고 짐작했을 뿐,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진 못했다. 폴크스바겐 코리아 공식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김씨가 동의할 경우, 본사 자체 기술팀에서 화재 원인을 조사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조사 결과 ‘원인 미상’으로 종결될 경우 보상은 없으며, 수리비는 100% 차주가 부담한다​면서 ​다만 차주가 여타 기관을 통해 직접 원인을 규명하면 보상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회사 측의 자체점검을 받기로 동의하는 대신 폐차를 결정했다. 


김씨는 ​보상과 관련해 회사 측과 이견이 발생할 경우 보상 받기까지 시간이 길어질 거라고 생각해 폐차를 택했다. 보상이 지연될 경우 금전적 타격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체조사에서 원인 불명으로 판정되면 다른 기관에 조사를 맡겨야 하는데 비용과 시간을 차주 홀로 부담해야 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동일 차종에서 발생한 화재는 한 차례가 아니다. 2015년 11월 출고된 제타 BMT 프리미엄 차량에서도 올해 1월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폴크스바겐 애프터세일즈 담당자 역시 차주에게 ​원인 미상 화재로 판정될 경우, 차주가 국과수나 제3의 기관을 통해 직접 원인을 규명해 오면 보상을 고려하겠다​고 대응했다. 이에 차주 허아무개씨는 조사가 종결될 때까지 보상이 지연될 것을 우려해 ‘원인 미상’​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데 동의했다. 


폴크스바겐 코리아는 제조사의 과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화재에 대한 보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체 결함으로 규명될 경우 당연히 보상을 제공하겠지만, 사실상 책임관계가 불분명할 경우 소비자 과실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결함 책임을 제조사가 질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폴크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는 “화재의 원인에 대해 기책 사유가 없는 이상 회사가 보상하지 않는다. 원인 미상 건에서 대해서는 기책 사유가 없어 보상할 근거가 없다. 다만 검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소비자 동의하에 소방서 및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원인을 규명하고 자체 기술팀의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주들은 자체적으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제3의 기관에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비용과 시간을 차주가 온전히 부담하는 까닭에 업체 측의 점검 결과와 보상책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체검사 결과에 대해 기술 분석 소견서도 공개하지 않는 일방적인 통보 방식도 소비자 불안을 가중하는 요소로 풀이된다.

앞서 1월 화재가 발생한 차량의 차주 허씨는 “기술팀에 기술 분석 소견서를 요구하자, 내부 방침 상 법적인 요청 없이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안내 받았다. 기술팀이 차량을 점검하며 주고 받은 메신저 내역을 눈으로 확인한 게 전부​라면서 ​간접적인 정황 자료를 제공받았지만, 사실 소비자 입장에선 검사가 제대로 이뤄진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는 ​차량의 안전 관련 이슈에 대한 기술 분석의 경우, 제조사에 화재 책임 여부 정보만 공개하고 있다. 내부 방침상 기술 분석 관련 문서는 외부 반출을 금하고 있어서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 폴크스바겐, 독일 3사 중 ‘원인 미상’ 화재 보상책 유일하게 전무

시사저널e 취재 결과 국내 수입차 시장 3강을 형성하고 있는 독일 수입차 업체 중​ 폴크스바겐만이 유일하게 원인 미상의 화재에 보상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BMW 코리아가 원인 미상 화재에도 소비자 보상책을 마련해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최근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BMW는 차량 화재와 관련한 보상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8개월간 BMW 차량 20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주력 제품인 520d의 경우 2013년 이후 연식에서도 엔진룸 화재가 발생해 업계선 BMW가 자발적 리콜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BMW 관계자는 “약관에 따라 공식 서비스센터를 통해서 관리가 돼 온 차량에 한해 현금 및 수리 등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 보증기간이 끝났거나 ‘원인 불명’의 화재 차량이어도 마찬가지로 화재 사고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벤츠 역시 소비자의 과실이 없다고 판단되고 원인이 미상 또는 불명으로 판명이 될 경우엔 보상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화재 차량의 파손 정도에 따라 수리가 가능하면 무상 수리를 진행하고,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 일반적으로 중고차 가격으로 보상이 진행된다. 아울러 화재 원인 조사가 종료되면 화재 원인 및 파손 정도에 대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수입차 업체의 내부 방침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이 원인 미상의 화재에 보상을 받기 위해서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면상 한국소비자원 자동차팀 팀장은 “판매된 차량은 소비자의 점유 관리 하에 있기 때문에 회사의 기책이 확인되지 않는 한 손해배상을 할 책임은 없다. 소비자는 과실이 없음을 반증하면 되는데, 이 과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봐야 한다”며 “차량 화재의 경우 시동 꺼짐 이상으로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는 사고인 만큼, 회사에 불리한 감식 결과가 나왔을 경우 소비자 정보 제공에 소극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부 차량 결함의 경우 제조상 자체 결함임에도 구매 직후 바로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수년간 누적되면서 사고로 직결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연식이 오래될 경우 원인 불명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 과실로 책임을 전가하기 쉬운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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