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 ‘사법부 협력사례’ 적시…1·2심 뒤집은 파기환송 당시 재판장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회장 강동균씨 등이 1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해군기지전국대책회의 제공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제주해군기지 관련 판결이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명시된 문건이 공개됐고, 재판을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거래 수단’으로 삼은 정황이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행정소송 1·2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재판장이었다. 대법원 판결은 전원합의체가 원칙이고 재판장은 현 대법원장이 맡는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회장 강동균씨 등 3명은 17일 오후 2시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해 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연 강씨 등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행정부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는 방법으로 결탁하고,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합법화해 줬다”면서 “정의사회구현을 위해 가장 앞장서야 할 책임 있는 분이 사법농단을 벌인 것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발장을 접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 등은 “국방부의 무리한 공사로 강정마을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이 무너져 내렸다”면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지만) 도리어 범법자가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문제 삼은 문건은 2015년 11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이름의 문건이다.

이 문건 ‘별첨자료 3’에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가 정리돼 있다. 크게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4대 부분 개혁 중 노동 부문 관련 ▲4대 부문 개혁 중 교육 부문 관련 등이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사건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와 사회적 안녕’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재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정부의 국방·군사시설 사업실시계획승인처분이 법적으로 유효함을 선언”했다고 분석했다.

이 문건은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맛에 맞도록 판결을 해 왔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양 전 대법원장이 정권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이뤄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 사례로 봐야 한 다는 게 강씨 등의 주장이다.

 

2015년 11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 일부 / 사진=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 언급된 이 판결은 2012년 7월 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사건이다.

강정마을 주민 438명이 2009년 4월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했던 이 행정소송(국방·군사시설 사업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 확인소송 등)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실시계획을 국방부가 승인한 것에 대한 적법성 여부가 쟁점이었다.

앞서 국방부는 2009년 1월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인근에 이지스함 등 함정 20여척을 함께 댈 수 있는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국방·군사시설 사업 실시계획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 주민들은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승인돼 무효”라며 2009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해군참모총장은 같은 해 7월 뒤늦게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고, 제주도지사는 같은 해 12월 일부 부지의 절대보전지역 축소를 내용으로 한 사업 내용을 변경했다. 이후 국방부는 제주도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뒤 2010년 3월 계획을 일부 고쳐 다시 승인했다.

1·2심은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국방부의 2009년 실시계획 승인은 무효이지만, 해군본부가 계획승인 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고 도지사와의 협의를 거친 뒤 변경승인을 받은 이상 변경된 2010년 사업계획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장이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9년 실시계획 역시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해군기지 사업전체에 합법성을 부여했다.

전원합의체는 환경영향평가서가 제출돼야 할 시기를 사업 ‘실시계획’을 승인(2009년 1월)하기 전이 아닌 ‘기본설계’가 승인되기 전(2010년 3월 이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전원합의체는 또 사업부지인 절대보전지역 변경 당시 제주도지사가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도지사의 재량행위인 만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당시 재판관 중 2명(전수안, 이상훈 대법관)은 국방·군사실사업의 실시설계 승인 이전에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승인 처분은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입법 취지나 기존 대법원 판결들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어서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무효라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 사건은 2012년 12월 서울고법에서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대로 판결돼 종결됐다. 이후 국방부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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