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당한 코인레일, 자체 발행 코인으로 손해배상해 논란…투자자 보호장치 시급

“그야말로 창조경제다”

지난 15일 서비스를 재개한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레일을 두고 다수의 투자자들은 ‘창조경제’를 외쳤다. 코인레일이 해킹 피해액 400억원을 자체 발행한 가상화폐 ‘레일코인’으로 배상하겠다고 밝힌 탓이다.

해킹 피해액은 400억원인데, 코인레일은 무려 792억원어치 레일코인을 찍어냈다. 레일코인 보상안을 택하지 않으면 다른 보상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레일코인을 받고 있다. 400억원의 빚이 생기자, 직접 화폐를 만들어 갚아버린 셈이다. 그야말로 창조경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투자자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참 많다. 일단 해킹 피해액으로 알려진 400억원도 정확한 규모가 아니다. 투자자들이 거래소 지갑 주소를 추적해 밝혀낸 수치다. 투자자들이 코인레일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도 피해 규모가 명확치 않다는 이유로 각하되는 상황이다.

코인레일 측이 정확한 피해 규모를 밝히지 않다보니 투자자들은 자신의 가상화폐가 얼마나 도난당한지도 몰랐다. 피해 코인 명단에 없었던 비트코인이 도난당했다는 사실도 코인레일이 한 달 만에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알려졌다.
 

자신의 코인이 얼마나 도난당한지도 모른 채 서비스 재개만을 기다리던 투자자들은 더 황당한 상황을 만나야 했다. 서비스를 재개한 코인레일에 로그인을 하자마자 마주한 건 ‘배상안을 선택하라’는 문구였다. 코인레일이 직접 가상화폐를 매입해 배상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코인레일이 발행한 레일코인으로 배상을 받거나 둘 중 하나를 무조건 택해야 했다.

첫 번째 안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불투명한 배상안이다. 때문에 다수의 투자자들이 레일코인을 택했다. 그런데 레일코인 시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3분의 1토막이 났다. 거래소의 보안 문제로 1000만원을 도난당한 투자자에게 돌아온 것은 300만원뿐인 셈이다.

애초에 제도권 밖에 있는 투자 수단을 택한 게 잘못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상화폐 투자가 시작된 것이 며칠 전 일은 아니다. 투자자 보호 방안을 법적으로 마련해둘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객들의 소중한 자산이 걸린 거래소가 해킹을 당하고, 해킹 피해 고객들에게 마음대로 보상안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투자자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킹 거래소의 배상 책임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으니 거래소 스스로 가상화폐를 ‘창조’해 배상하겠다는 황당한 방안이 나오게 됐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코인레일 해킹 사태도 예상된 재난이 아니었을까.

몇몇 투자자들은 도저히 레일코인을 받지 못하겠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가상화폐 관련 소송은 여전히 난제다. 거래소에 배상 책임을 지우려면 거래소의 보안 관리 부실이 법적으로 증명돼야 한다. 현재 코인레일이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해킹 원인을 조사 중인 상황이므로 관리 부실이 증명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배상 책임이 있다고 해도 배상 규모를 어떻게 판단할 건지도 불투명하다.

예상된 재난이 일어났는데도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해킹 사고는 또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황당한 배상안이 또 나온다면 그건 큰 문제다. 과실 없는 투자자들이 한 순간에 자산을 잃어버리는 사태가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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