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삼성물산 합병 부당개입·손해입증이 핵심 쟁점…‘이재용 재판’ 결과 등 변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코퍼레이션의 설립자이자 CEO인 폴 싱어 (Paul Singer)가 지난 2014년 5월 12일 뉴욕에서 열린 맨하탄 정책 연구 기관 알렉산더 해밀턴 시상식 (Alexander Hamilton Award Dinner)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AP통신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8000억원대 피해를 주장하며 한국정부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을 제기했다. 

 

엘리엇은 한국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삼성물산 지분 약 7%를 보유했던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송의 쟁점은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엘리엇의 손해가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지 등 두 가지가 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엘리엇이 12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근거해 ISD 중재신청서(Notice of Arbitration)를 한국 정부에 접수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4월 13일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Notic of Intent)를 접수한 엘리엇은 90일이 지난 시점에 공식 중재 제소를 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공식 중재 제소 이전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최소 90일간 협의 기간을 갖도록 규정돼 있다.

엘리엇은 중재신청서에서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조치해 주가가 하락했고, 최소 7억7000만 달러(한화 약 8700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유엔 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 중재 규칙에 따라 한국 정부와 엘리엇 간 중재지를 영국으로 제안했다. 엘리엇 측 법률 수석대리인을 맡은 영국계 로펌 ‘스리크라운’이 있는 런던 등지에서 협상을 벌이겠다는 전략이다.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영국을 중재지로 동의할지, 제3의 장소를 재차 제안할지 여부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2015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비율이 주주 입장에서 불공정하다며 문제제기를 해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안을 통과시킨 지난 2015년 7월 20일 삼성물산은 전 거래일보다 3.38% 내린 6만원으로 장을 마쳤다. / 사진=연합뉴스

◇박근혜정부 FTA 협정문 임무준수 및 손해 발생 입증이 ‘쟁점’


이번 소송의 쟁점은 박근혜 정부가 한·미 FTA 협정문의 임무를 준수했는지, 엘리엇의 손해 발생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지 등 두 가지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첫 번째 쟁점은 우리 정부가 ISD 투자자 보호 약정에서 ‘자국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투자자 보호 조항을 위반했는지 여부다. 엘리엇의 손해배상 요구는 한·미 FTA 협정문의 두 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원칙을 박근혜 정부가 위반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엘리엇은 중재의향서에서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보건복지부,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이 한·미 FTA 협정문에 포함된 내국민 동일 대우(11.3조)와 최소 대우기준(11.5조) 조항을 위반했다”고 적었다.

내국민 대우 조항은 외국 투자자에 대해 같은 상황에서 내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부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각 당사국은 자국 내 영역 내 투자의 설립·인수·확장·경영·영업·운영과 매각 또는 그 밖의 처분에 대하여 동종의 상황에서 자국 투자자(삼성)에게 부여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아니한 대우를 다른 쪽 당사국의 투자자(엘리엇)에게 부여한다’고 규정한다.

한국 정부가 삼성과 엘리엇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한·미 FTA 협정문을 위반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란 얘기다.

두 번째 원칙인 최소대우기준은 ‘각 당사국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하여,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를 적용대상투자에 부여한다’고 규정한다. 대우의 최소기준은 ‘외국인의 대우에 대한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으로, 국제관습법은 ‘일반적이고 일관된 국가관행으로부터 결과된 것’이며 최소기준은 ‘외국인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지칭한다.

즉,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엘리엇의 경제적 권리·이익 관련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 원칙을 지켰는지를 놓고 엘리엇과 우리 정부가 서로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중재판정 사례에서 국가가 고의로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점이 넓게 인정되는 추세라는 점이다. 한 통상 전문 변호사는 “국민연금 내부에서 합병에 관한 반대가 있었고, 직권남용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관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국가의 고의 의무 해태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이 소송 두 번째 쟁점은 엘리엇의 손해발생 입증 여부다.

엘리엇은 약 7700억원을 피해액으로 산정했는데, 산출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최대한 유리한 방식으로 피해액을 산출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하지만 합병 당시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해 주가가 하락한 만큼 정확한 손해를 산정하는 일 또한 까다로운 과정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합병에 반대하던 엘리엇 스스로 주식을 매각한 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6년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민연금을 본인 승계 문제를 위해 사용했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뉴스1

◇엘리엇 ISD 변수로 떠오른 국정농단 재판

이 소송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국정농단 사건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사건이고, 나머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이다.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경우 합병 과정에 부당 개입한 혐의가 인정돼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유죄는 엘리엇 측에 유리한 근거가 된다. 엘리엇은 지난 5월 2일 ISD 추진을 공식화하며 “합병을 둘러싼 스캔들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형사소추로 이어졌고, 법원에선 삼성그룹 고위 임원,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형사 재판과 유죄 선고가 이어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관련 사건에서는 ‘승계 작업’의 존재를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ISD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승계 작업이 존재했다고 인정되면 한국 정부의 ‘부정한 개입’도 자연스레 뒷받침 되는 구조다. 승계 작업 존부에 대한 1·2심 판단은 엇갈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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