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확대‧정년 연장‧임금피크제 개선 동시달성 힘들어…노조 “금융산업 호황인 지금이 적기”

지난해 산별중앙교섭을 기다리던 금융노조의 모습./사진=뉴스1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근로시간 단축 및 채용 확대,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개선 등을 주장하며 파업투쟁 돌입을 예고한 가운데 노조 측 주장이 ‘트릴레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릴레마는 세 가지 딜레마라는 뜻으로, 세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금융노조가 트릴레마 벽을 넘어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금융노조는 지난 11일 긴급 지부 대표자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선 33개 지부 대표가 만장일치로 파업투쟁 돌입을 결정했으며 다음달 7일 찬반투표를 실시해 쟁의행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찬반투표로 파업이 가결되면 금융노조는 2016년 이후 2년만에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앞서 금융노조는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교섭을 시도했지만 끝내 결렬됐다. 이에 금융노조는 지난달 18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세 차례 조정회의를 열었으나 노조와 사측의 접점을 찾지 못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채용 확대‧정년 연장‧임금피크제 개선…한정된 인건비 내에선 힘들다

금융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신규채용 확대,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개선 등을 주된 요구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 기준 연령을 높일 경우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측이 비용 상 어려움을 들며 노조의 요구를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주요 은행들은 전년 퇴직자 수만큼 채용 문을 열고 있다. 1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시중은행들은 전년에 비해 채용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신한은행 지난해보다 270명을, 우리은행은 155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그와 동시에 퇴직자 수도 많아졌다. 1분기 말 기준으로 신한은행 임직원 수는 587명, 우리은행은 878명이 줄었다. 올해 초 78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던 신한은행은 이에 맞춰 올해 채용 규모를 750명으로 늘렸다.

따라서 사측은 정년 및 임금피크제 개선 요구를 들어줄 경우 신규 채용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고 있으나, 노조는 채용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내년으로 미뤄진 금융권 주 52시간 근로제를 연내 도입해 채용 여력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에 한정된 인건비로 노조 측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조가 사측에 제시한 과제들이 트릴레마라는 지적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실시해 고용을 확대하려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절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절감된 인건비를 신규 채용에 활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개선 등이 함께 도입되면 인건비 절감은 어렵다. 채용 확대 또한 힘들어진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위원은 “52시간제 시행으로 인건비를 줄이면 채용 여력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임금을 깎진 않는다. 기존 임금을 깎지 않고 정년을 늘린다면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고용을 늘리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산업 호황…노조 “고용 여력 늘릴 적기”

금융노조는 사측이 노조 요구를 모두 수용하더라도 채용을 늘릴 만한 여력이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은행 등 금융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실적이 크게 늘어나는 등 호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분기에 실적 호조세를 보인 주요 은행들은 예대마진 등에 힘입어 2분기에도 양호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노조는 은행권이 호황을 누리는 지금이야말로 인력구조를 개편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사측이 청년 실업, 고령화 사회 등을 감안해 고용에 쓰이는 비용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지금 주요 은행들이 호황을 달리고 있는데, 바로 이럴 때 미래를 위한 인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임금피크제, 희망퇴직 등 그간 노동자들이 희생해온 부분을 감안해 고용 여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도 금융노조의 ‘시기론’에 힘을 보탰다. 이 관계자는 “주52시간제는 올해든 내년이든 어차피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52시간제를 통해 채용을 늘릴 수 있는데, 여기에 정년 연장을 더 한다고 해서 채용 여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면 지금이 그 여력을 늘릴 적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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