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재보복 ‘치킨게임’ 양상…韓 포함 세계 경제 악영향 전망

미국‧중국 등 G2(Group of Two)의 ‘무역전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10일(현지시간) 2000억달러(약 223조40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대중(對中) 수입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중국의 ‘맞대응’에 대한 보복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조치에 중국도 물러서지 않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앞선 관세 조치 발표가 있을 때마다 비슷한 수준의 대미(對美) 수입품에 대한 관세 조치를 취해왔다. 또한 이날 미국의 추가 관세 조치 발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항의하며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국제경제 양대 산맥 국가들 간의 무역전쟁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양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미‧중과의 수출입 비중이 세계 6위인만큼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적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 고율 관세 부과 품목 및 규모 /그래픽=연합뉴스

◇미‧중, 양보 없는 신경전…‘강대강’ 대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중국 수입품 6031개 품목에 대한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관세 맞대응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지 일주일 만이다. 이 같은 조치는 공청회‧의견수렴 등 절차를 통한 검토를 거쳐 오는 9월부터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지난 1년간 트럼프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중국에 불공정 행위를 중단하고 시장을 개방해 진정한 시장경쟁에 임하라고 촉구해 왔다”면서 “중국은 우리의 타당한 우려를 고심하기보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을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추가 관세 조치 발표가 중국의 보복관세에 대한 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고, 지난 6일부터 340억 달러의 각종 산업 부품·기계설비·차량·화학제품 등 818개 품목에 대해 우선적으로 25% 관세부과 조치를 발효한 바 있다.

이번 발표로 미국은 중국의 대미 수출 총 5055억 달러 중 2500억 달러에 대한 관세부과를 하게 됐다. 특히 이번 관세 조치에서는 중국 정부의 첨단제조업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와 관련된 품목들과 일상 소비재까지 포함돼 중국의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재보복 관세 조치가 있을 경우 전 수입품에 대한 관세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다.

이러한 미국의 강력 조치에 중국도 강하게 맞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해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면서 “항상 그렇듯 필요한 대응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아울러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응 계획도 밝혔다.

중국은 지난 340억 달러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 조치에 대해 즉각 미국산 농산품‧자동차‧수산물 등 545개 품목(340억 달러 규모)에 관세 조치를 취했던 것과는 달리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개발도상국들의 협조를 이끌어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관련국에 대한 수입 확대 방안을 발표했고,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중국과 개도국 간의 관계를 강조하고 나섰다.

왕 국무위원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랍국가 협력포럼 겸 제8차 장관급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중국은 모든 개도국과 함께 있고, 개도국의 영원한 친구와 진정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개도국들과 더욱 개방된 세계 경제를 구축하고 개도국의 전체 이익을 수호할 뿐만 아니라 인류 진보에 있어 새로운 공헌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리청강(李成鋼) 중국 상무부 부장 조리도 미국의 이번 관세 조치에 대해 WTO 체제와 세계화를 해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역내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다자무역을 수호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8일 방한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양국 경제 ‘빨간불’에 반발…韓경제에도 악영향


미국의 이번 추가 관세 조치로 양국의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추가 관세 조치가 내수 경제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이번 조치가 발효되면) 미국 가정, 농부들,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물품의 가격이 인상되게 된다”며 피해를 우려했다. 앞서 상공회의소는 지난 2일부터 미국의 관세 조치 반대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미국 소매산업지도자협회도 “미국 내 가계가 벌을 받는 대상 중 하나가 됐다”며 이번 조치의 ‘부메랑 효과’ 가능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일 세계적 신용평가업체 무디스가 운영하는 경제분석기관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의 효과로 내년 말까지 미국 내 일자리 14만5000개 감소, 국내총생산(GDP) 0.34% 감소 등을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린 해치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나는 중국의 기술 침해에 대항하기 위한 정부의 목표를 정해둔 노력을 지지해 왔지만 오늘 발표는 목표를 설정한 접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확장법 232조 남용’을 지적하며 관세 부과 명령에 의회 승인 요건을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양축을 맡고 있는 만큼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6월 중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통화가 전반적으로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다. 이와 같은 현상의 주요인으로 한국은행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을 꼽았다.

또한 경제예측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미국의 관세 조치로 중국의 총수출이 10% 감소하게 되면 아시아국가의 GDP 성장률이 평균 1.1%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밖에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일본, 한국 등 국가들에게도 물가상승‧수요약화 등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미국‧중국 등 국가들과의 수출입 비중이 큰 한국의 경우 당장 입을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관합동 대응체제를 본격 가동하는 등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연구원과 업종별 협회·단체 등과 함께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인한 수출영향, 업종별 파급효과, 대중 투자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코트라(KOTRA), 한국무역협회 등과 주요 수출시장에 미치는 영향, 주요 바이어 동향 등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미국의 관세 조치가 단기적으로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날 미국의 조치로 미‧중간 무역전쟁이 확산되며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산업부는 오는 12일과 13일 미‧중 무역분쟁 관련 실물경제 대응반 회의, 미국 자동차 232조 관련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 관계부처 회의 등을 연이어 개최해 이와 관련한 논의들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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