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밀’은 채무불이행, 운항 지연은 국제협약 위반…전문가 “소송 시 ‘예견된 사태’ 정황 커 면책 어려울 것”

'기내식 대란'으로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비행편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는 4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서 관계자들이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 화물을 싣고 있다. / 사진=뉴스1

‘노밀(No Meal)​ 사태에 대한 아시아나항공의 미흡한 대처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며 집단 소송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법적 공방이 이어질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사태에 대한 소비자 보상은 물론, 지연 운항에 대한 배상 책임까지 안게 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유례없는 기내식 공급 대란과 대규모 지연 운항 사태에 대한 판례가 새롭게 정립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이 수일째 기내식을 제때 싣지 못하며 운항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5일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기내식이 제때 실리지 못하며 운항이 지연된 항공편은 지난 1일 51편, 2일 10편, 3일 2편, 4일 2편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기내식이 미탑재된 항공편은 36편, 28편, 43편, 24편으로 확인됐다.

당시 항공편을 이용한 탑승객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초기 대응이 다소 미흡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노밀 보상으로 승객 1인당 1만원 상당의 밀쿠폰 및 좌석 등급에 따라 30~50달러상당의 바우처를 제공했다. 하지만 해당 보상이 적절치 않았을뿐더러 지연 운항에 대한 안내조차 미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지연 운항과 노밀 사태에 대한 불만글이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만족스럽지 못한 초기 대응으로 인해 집단소송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1대당 평균 탑승객 수는 200명가량으로, 4일 동안 1만3000명 이상의 탑승객이 운항 지연을 겪은 것으로 추산된다. 동일한 항공기 비행으로 인해 50명 이상의 집단보상이 필요할 경우, 한국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하거나 집단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경우 원고 측은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 공급 차질 보상과 지연 운항에 대한 배상 책임을 동시에 물을 수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기내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을 경우, 운송계약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금전배상 책임이 명확한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청구 금액이 소액인 까닭에 실질적으로 기내식만을 이유로 집단소송을 이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운항 지연에 대한 배상 책임도 제기될 수 있다. 다만 항공사가 지연, 결항에 대한 예기치 못한 불가항력적인 사유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경우 배상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가능성이 높다. 기상사정, 공항상정, 항공기 접속관계, 안정운항을 위한 예견치 못한 조치 등이 불가항력적 사유에 포함된다. 

 

이와 함께 항공사는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문제 해결 노력를 보였는지 입증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대란으로 빚어지 운항 지연이 예기치 못한 불가항력적 사유임을 입증할 경우 지연운항에 대한 배상책임으로부터 면책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태와 이로 인한 운항 지연이 다소 ‘예견된 사태’라는 정황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업계선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업체를 변경하는 전후 맥락에서부터 예견된 사태가 아니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30일부로 15년간 기내식을 공급해 온 LSG코리아와 계약을 해지하고 샤프도앤코코리아와 3개월 단기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하루 3000명분의 식사 분량을 처리해 온 샤프도앤코가 하루 3만명분 이상의 식사가 공급돼야 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며 기내식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물량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약을 했다는 정황이 항공사의 과실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마땅한 기내식 공급업체를 물색했으나 찾지 못했고, 서비스 실시 전 샤프도앤코와 수차례의 시뮬레이션과 훈련을 거쳤지만 서비스 실시 후 포장 및 운반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다는 입장이다. 

 

김지혜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항공서비스 관련 소송 과정에선 단순 수치적 통계 뿐만 아니라 사태를 둘러싼 모든 정황 증거도 다각적으로 고려된다. 항공사는 소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부에 대한 입증을 해야 한다​며 애초에 하청업체의 인적, 물적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급 계약 자체가 항공사 과실로 풀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사후 대응 방식도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크다. 회사의 사후 대처 방식이 손익계산을 고려한 정황으로 비춰지는 까닭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을 받지 못한 승객에게 노선과 좌석 등급에 따라 30~50달러 상당의 바우처(TCV)를 지급해왔다. 그러나 TCV의 사용처가 사실상 기내 면세품 쇼핑밖에 없어 결국 아시아나항공이 보상해야 할 금액을 줄이고 면세품 판매 수익을 올리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선 이 같은 대응 방식이 소비자의 장기적인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집단소송이 이어지기 전까진 항공사들의 위법행위에 대한 보상을 강제할 기관이 부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소비자원 등 분쟁조정기관은 있지만 권고 사항을 강제적으로 집행할 국내 기관은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항공서비스 관련으로 분쟁이 발생해도 법적 소송까지 이어지지 않는 한 항공사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법적 소송이 이어지기 전 분쟁조정 과정에서 관련 기관이 회사에 배상을 권고해도 항공사들이 소비자에게 마일리지나 포인트 등으로 지급하며 유야무야 넘기는 경우가 많다. 결국 당사의 항공편을 또 이용하라는 보상 방식”이라며 “청구금액이 소액일 경우 소비자들이 소송을 걸기도 어렵다는 점을 항공사들이 잘 알고 있다. 권고 사항 불이행 등 통계기록을 공개하는 것을 비롯해 실효성 있는 방안의 모색도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